[단독]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둘러싼 ‘3가지 오해’ 오보 이후 확대 재생산… 고리 끊자

입력 2015-10-25 19:27 수정 2015-10-25 19:49
내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은퇴를 예고한 강수진(48) 국립발레단 단장이 국내에서 마지막 전막 발레 ‘오네긴’을 선보인다. 발레 팬이라면 11월 6∼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오르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오네긴’ 내한공연을 쉽게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 역시 앞 다퉈 강 단장을 다룬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은퇴를 앞둔 강 단장과 관련해 그동안 국내에 잘못 알려진 ‘정보’를 이제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바로 ‘동양인 최초 로잔 국제 콩쿠르 우승’ ‘동양인 최초·최연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현역 최고령 발레리나’라는 세 수식어가 ‘사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정보가 1990년대 초반 해외 발레계 소식에 밝지 않았던 국내 언론의 오보 이후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강 단장 자신이 과장을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 단장은 1985년 로잔 콩쿠르에서 1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스칼라십상을 다른 4명의 무용수들과 공동으로 받았다. 로잔 콩쿠르는 당시 공식 순위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관례적으로 스칼라십상을 가장 중시해 왔다. 공동 수상은 뒤에 호명된 무용수의 성적이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강 단장에서 앞서 78년 일본의 요시다 나오미가 스칼라십상을 다른 3명과 함께 받은 적이 있다. 아시아 출신 최초의 수상이었다. 요시다 이후에도 일본은 강 단장이 상을 받기 전까지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나중에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가 되는 요시다 미야코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사실은 로잔 콩쿠르 홈페이지의 역대 수상자 코너에도 잘 정리돼 있다.

동양인 최초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 역시 강 단장이 아니라 일본의 요시다 나오미다. 요시다는 스위스 바젤 발레단 솔리스트로 활동하다 85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솔리스트로 이적했다. 강 단장은 이듬해 입단했다. 동양인 최연소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입단의 경우 강 단장이 19세로 입단했던 당시는 맞지만, 98년 일본 나카무라 쇼코가 18세로 들어가면서 이 기록이 깨졌다.

끝으로 현역 최고령 발레리나도 현재 은퇴 투어를 돌고 있는 실비 기엠처럼 프리랜서가 아니라 발레단 소속으로 전막 발레를 소화하는 경우로 한정한다 해도 강 단장이 아니다. 74년 동양인 무용수 최초로 바르나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올해 67세의 모리시타 요코가 지금도 전막 발레에 출연하고 있다. 일본의 주요 발레단 가운데 하나인 마쓰야마 발레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모리시타는 올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에 출연했으며 11∼12월 ‘호두까기 인형’에도 나온다.

강 단장과 관련한 세 수식어에 오류가 있다고 해서 한국인으로 그가 처음 달성한 업적들이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발레 평론가 문애령은 23일 “강 단장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30년 가까이 활약하며 동양인 무용수로는 처음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받았고, ‘캄머 탠처린(궁중 무용가)’에 선정된 바 있다”면서 “강 단장은 그동안 동양인 무용수로는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 왔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강 단장은 자신과 관련한 이 같은 수식어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강 단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내가 직접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도 어느 순간 이런 수식어들이 붙어 있었다. 주변에서 나를 아낀 나머지 내 성과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거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잘 몰랐던 데다, ‘최초’ ‘최고’ 같은 표현이 내게 의미가 없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칫 묵인한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오네긴’ 공연을 주최하는 기획사 크레디아 관계자는 “강 단장 경력을 설명하는 자료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세 수식어를 넣었는데 수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