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서리 내리는 상강, 이산가족 머리엔 벌써…

입력 2015-10-23 21:57 수정 2015-10-23 22:08

‘맑고 바람 없는 밤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때 공기 중 수증기가 지면이나 땅 위 물체 표면에 닿아 잔얼음으로 엉긴 것’.

‘서리’입니다. 생육기간이 길어 서리를 맞은 뒤에나 수확할 수 있다 하여 이름이 붙은 까만 콩 ‘서리태’, 서리가 내릴 무렵 느지막이 깬 병아리라는 뜻으로 힘없이 추레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서리병아리’, 고향의 것이라면 서리 내리는 즈음의 까마귀까지도 정겹다는 생각을 노래한 정지용의 시 ‘향수’ 한 대목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오늘(24일)은 상강(霜降)인데, 조석으로 기온이 떨어지고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이지요. 김장 등 겨울 채비에 나설 때입니다.

‘서리’는 ‘떼로 남의 과일이나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 ‘무엇이 많이 모인 무더기의 가운데’란 뜻도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의 사람 서리에 끼어 숨도 못 쉬었다”처럼 말할 수 있지요.

머리카락이 하얘진 것을 빗대어 ‘서리가 앉다’ ‘서리를 이다’라고 하는데, 짚으로 동여매진 통통한 김장배추 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은 새벽 서리를 본 적이 있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금강산에서는 머리에 하얗게 서리를 인 어른들이 아이처럼 울고 웃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이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