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대 사기범 조희팔 사건 핵심 관계자가 국내에 은신하고 있는데도 경찰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하는 등 수사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조희팔 다단계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방경찰청은 22일 오후 4시50분쯤 조희팔 사건 2인자인 강태용의 처남 배상혁(44)씨를 경북 구미시 공단동 한 아파트에서 붙잡았다. 경찰이 국내에서 수배를 내린 지 7년 만이다. 경찰은 국내에서 배씨 소재파악도 안 되고 생존 징후도 없다며 지난 19일 적색수배를 내렸지만 배씨는 버젓이 국내에 은신해 있었다.
배씨는 이날 오전 8시50분쯤 대구지방경찰청에 “오후 3시에 가겠다”고 자수 의사를 밝혔지만 나타나지는 않았다. 경찰은 전화 발신지를 추적해 수사팀을 급파한 뒤 발신지 주변 CCTV를 분석해 은신처에 있던 배씨를 검거했다.
검거 당시 배씨는 허름한 행색으로 49.5㎡의 임대아파트에 혼자 있었다. 오랜 기간 은신한 듯 아파트 안에는 취사 흔적도 많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아파트에는 데스크톱 컴퓨터 2대와 노트북 1대도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나 신용카드 등은 갖고 있지 않았고, 금융거래 흔적도 없었으며 현금 21만원만 갖고 있었다.
배씨는 조씨 일당이 수조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을 벌이던 초기에 전산실장을 맡아 투자금 유치와 배분 등을 총괄한 다단계 설계사였다. 조씨 일당의 연계 사업체인 티컴스 대표이사, 엠텍 이사 등에도 등재돼 있었다. 따라서 조씨 일당의 범죄수익 자금 흐름과 은닉처 등을 알 수 있는 핵심 인물로 분류된다.
경찰은 2008년 11월 조씨 일당과 공모해 1조1000억원대 다단계 유사수신을 한 혐의로 배씨를 수배했었다. 경찰은 배씨가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외국으로 나간 적이 있는지 조·강씨 등 사건 핵심 인물들과 접촉했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하지만 외국으로 밀항했을 가능성이 높다던 배씨가 구미에서 붙잡히자 그동안 경찰이 부실 수사를 하고 있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이 조씨 사망 발표 후 관련자들에 대한 첩보 수집과 행적 조사에 손놓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배씨의 최종 은신처가 구미여서 7년 동안 핵심 피의자를 코앞에 두고도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피해자 단체 관계자는 “여론이 악화되자 7년 동안이나 오리무중이던 배씨가 바로 검거됐다”며 “경찰은 배씨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수사 의지가 없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강씨가 중국 현지에서 검거된 이후 사건 핵심 인물들이 속속 붙잡히면서 검·경의 수사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강씨의 돈을 받고 수사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모(40) 전 경사가 중국으로 출국하다 지난 13일 붙잡혔고, 강태용씨는 중국에서 국내 송환을 기다리고 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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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22 2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