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비’가 본인부담금보다 더 빨리 늘고 있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관련 대책을 실행에 옮기는 데 소극적인 모습이다.
22일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6년 보건복지부 예산안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비급여 진료비는 2009년 15조8000억원에서 2013년 23조3000억원으로 4년 사이 47.5%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10.2%다. 이에 비해 총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같은 기간 10조4000억원에서 12조8000억원으로 연평균 5.3% 늘었다.
비급여 진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은 병원들이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진료를 늘리고 있어서다. 병원들은 건강보험 급여를 통한 수익만으로는 경영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의료기술 발달로 새로운 의료행위가 속속 시행되는 영향도 있다.
비급여 진료비 증가는 고스란히 가계 부담 증대로 이어진다. 2008년 가계소비 중 의료·보건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3.9%였으나 지난해 5.0%로 늘었다. 의료비 가운데 가계직접부담률(건강보험 본인부담+비급여 본인부담)도 2009년 35%에서 2013년 38%로 증가했다.
이처럼 국민 부담이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는 비급여 진료비 관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비급여 진료비를 직접 관리하기보다 비급여 진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수 있도록 ‘보장성 강화’를 한다는 게 정책 방향이다. 그렇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9년 65%에서 2013년 62%로 되레 낮아졌다. 보장성이 강화되는 속도보다 비급여 진료가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탓이다.
여기에다 병원들이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할 진료를 비급여 진료인 것처럼 속여 치료비를 받아내도 쉽게 적발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비급여 진료의 이름과 코드 등이 병원마다 제각각이어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내가 낸 진료비가 적절한지 확인하는 제도가 있지만 진료비 내역서만으로 급여·비급여 진료를 구분해내기는 어렵다.
복지부는 지난 2월 ‘2014∼2018년 건강보험 중기보장성 강화계획’에서 ‘비급여의 합리적 관리를 위한 공적 관리 기반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들이 알기 쉽고 찾기 쉽게 비급여 관련 정보 공개를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병원별 진료비용을 한 곳에서 비교할 수 있도록 진료비 공개사이트를 열겠다고 했다. 병원마다 이름이 다른 비급여 의료행위를 표준화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국회 예산정책처의 조사 결과 내년도 예산안에 관련 예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계획만 발표하고 꾸물대고 있다는 얘기다. 예산정책처는 “비급여 의료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의료법 개정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표준화와 같이 별도의 법 개정 없이 제도개선이 가능한 사항은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급여 의료비와 관련된 각종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담 조직 신설을 검토하는 게 좋겠다”고 주문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건보 혜택 없는 ‘비급여 진료비’ 본인부담금보다 빠르게 증가
입력 2015-10-22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