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적합업종 시행 4년의 성적표] ‘시장 약자’ 보호막… 경쟁력 약화 우려

입력 2015-10-23 22:24
간장을 주력 상품으로 하는 중소기업 A사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에 비해 30% 하락했다. 영업 인력도 일부 감축해야 했다. A업체는 60년 동안 장류만 만든 한 우물 기업이었다. 그러나 간장 고추장 등 장류 사업이 성장하자 10년 전부터 대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대기업들은 1만4000원짜리 상품을 반값에 판매하고 다른 상품에 끼워 팔기도 했다. 올해 시장 전망도 좋지 않다. 대기업 장류가 학교 급식시장을 대부분 차지하면서 다른 중소 장류 제조 업체들도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중기) 적합업종 제도가 시행된 지 4년이 지났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자 2011년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적합업종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품목은 73개다.

하지만 중기 적합업종의 실효성은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 중소기업계와 야당은 “권고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야당은 2013년 4월 중기 적합업종을 중소기업청장 산하 심의위원회에서 지정·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적합업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인데,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면 대기업 측은 ‘적합업종 제도가 중소기업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대기업 규제에만 악용된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1년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던 44개 중소기업 단체를 대상으로 지난해 설문조사한 결과 44.1%는 ‘대기업이 권고사항을 잘 이행했다’고 평가했지만 32.4%는 ‘잘 이행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식품 제조업에서는 적합업종 권고사항이 잘 준수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50%에 이르렀다.

재계는 중기 적합업종 지정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실시됐던 중기 고유업종 제도를 근거로 든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달 중기 고유업종 폐지 이후 중소기업의 생산액은 11% 포인트, 노동생산성은 3.2% 포인트 증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낀 중견기업들은 중기 적합업종 규제 때문에 중소기업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에는 중견기업의 14%가 중소기업 회귀를 검토했다. 이 중 절반 정도인 6.4%가 “중기 적합업종 때문에 중소기업 회귀를 검토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 기간은 3년이며, 재지정을 신청하면 3년 더 연장되는 일몰제도다. 현재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대부분의 업체들이 2017∼2018년이면 적합업종을 졸업한다. 때문에 법제화 논란보다는 장기적으로 중소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23일 “고유업종 제도가 폐지되고 다시 적합업종이 도입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 보호가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시장 생태계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업이 일상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