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택(59)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 당선자를 최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6월 당선된 그는 내년 1월1일 취임을 앞두고 있다. IMO는 유엔 산하 국제전문기구로 해운·조선 관련 항로, 안전, 해양환경, 해상교통규칙, 항만시설 등의 국제 규범을 제·개정하고 그 이행을 감독하는 권한을 가진 기구다. 사무총장은 ‘세계의 해양 대통령’이라 불린다. 임기는 4년이고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한국인이 유엔 관련 기구 수장에 오른 것은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세 번째다.
-당선 과정에서 정부 협조가 없었다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적도 있었는데 실상이 뭔가.
“선거가 6월인데 지난 2월말까지만 해도 당선은 물건너 간 듯 했다. 외교부는 국제선거 전략을 지난해 12월 다 짜버렸기 때문에 늦었다는 입장이었으며 다른 선거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IMO 사무총장 선거에 외교력을 쏟기 어렵다고 했다. 해수부는 장관도 공석이어 의사 결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2011년에 이루어진 선거에서 우리나라 후보가 성공하지 못한 사례가 있어 더욱이 신중한 입장이었다. 제가 입후보했을 때 전문성, 국제경력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었다. 특히 영어구사 능력에 대한 세밀한 검증이 필요했다. 유럽 등 다른 나라 후보들은 이미 지난해 12월부터 캠페인을 시작한 상황이었고 유럽 후보가 무조건 된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당선됐나.
“저는 고시 출신도 아니고 비주류이다. 해양대를 졸업하였으며, 배를 타다가 공무원이 됐다. 당시 해운항만청에서는 배를 탄 경력을 가진 해기사 출신을 5급 공무원으로 특별채용하는 제도가 있었다. 해기사 출신으로 해상안전에 대한 정책 수립 이행 등에 다향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한 1986년부터 IMO에 정부대표로 참석해 우리나라 해운 및 조선 산업을 대변하며 IMO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바다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20년이 넘는 국제활동, 그리고 공무원 경력이 사무총장으로의 자격요건에 부합된다고 여러 회원국에서 평가해 준 것 같다. 또한 부산지역 주요 인사들의 건의에 따라 외교부, 해수부를 비롯한 정부차원에서 재검토가 있어 적극적으로 선거활동이 시작됐다. 특히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남미 방문 당시 지원 활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월호 사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다른 후보들에게 세월호 사고는 저에 대한 공격 포인트였다. 세월호 사고가 난 나라에서 어떻게 사무총장을 하려고 하느냐는 논리였다. 또한 다른 후보들과 달리 저는 3월말에 후보 등록을 하는 등 출발이 늦은데다 해외 교두보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던 남미에서 많은 표가 나왔다. 남미 출신 후보가 없었던데다 당시 박 대통령 중남미 순방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월 중남미를 방문해 지지를 요청한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는 세월호 사고 1주기여서 미국 방문을 연기되면서 당초 하반기로 계획했던 중남미 순방이 앞당겨졌다. 이번 일 뿐만 아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의지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한다.
-업무 인수 작업은 잘 되고 있나.
“IMO 총회가 다음달 11월 23일부터인데 26일 총회인준을 받아야 한다. 공식적인 취임은 내년 1월1일부터지만 사실상 총회 인준을 받으면 업무가 시작된다.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만났다. 복잡한 국제적 이해관계와 조정 등에 대해 많은 조언을 들었다. 사무국 운영과 회원국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애로사항 등에 관한 의견도 나눴다. 제가 유럽후보에게 역전승을 하니까 유럽 회원국들의 실망감이 컸다. 따라서 유럽 회원국들과 긴밀히 협의해 IMO를 끌고 가는 것도 숙제다. IMO의 재정 지원이 정규회비 말고도 사업을 위한 기부금이 있는데, 이 사업기부금의 상당 부분을 일본 한국 유럽 등이 내고 있다.”
-IMO의 규제 수단과 방식은.
“예를 들어 미국에 다른 나라 선박이 들어갈 경우 미국 관료가 선박에 올라와서 IMO에서 만든 규범이 적용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결함이 발견되면 배가 출항정지 된다. 내년부터는 특정 국가를 방문해 국제항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선사와 정부의 감독체계, 관계법 등을 점검하는 제도가 강제로 시행된다. 그동안 IMO가 국내 연안여객선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해운과 조선업이 발달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렇게 큰 사고가 나는데 그대로 놔두지 말고 뭔가 감독하는 걸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운항 선박의 안전관리도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국제 해운업계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작년부터 세월호 같은 배에 대해서도 IMO서 감독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세월호는 국제적으로도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국내선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지 않고 있지만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IMO에서 각국 연안 여객선에 대한 별도로 규정 만들어서 감독을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양 안전과 관련한 제도와 의식, 문화가 보완돼야 한다. 후진국도 아니고 한국에서 그런 사고가 생긴 것에 대해 국제적으로도 충격이 컸다. 우리나라는 조선업이 세계 1위, 해운업은 5위다. 삭제 국내 선박에 대한 제재 방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문제점을 평가한 것을 해당 국가에 보내고, 그 나라가 관련법에 따라 제재를 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사무총장 역할을 어떻게 하고 싶나.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시스템과 인프라를 안전하게 만들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고를 어느 누구보다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사고 때 항만청 사무관으로 있었는데 열흘 가량 현장에서 지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여러 시스템이 잘 되도록 많은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이 보내는 것으로 여긴다.”
신종수 부국장 jsshin@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임기택 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 당선자] “난 비주류, 유럽 후보에 역전승 기적”
입력 2015-10-22 2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