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우조선해양 노조에 파업권 포기와 임금 동결, 구조조정에 대한 동의를 요구하면서 22일 자금 지원을 전면 보류했다. 또 산업계 전반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로 확대 개편, 28조원 규모의 채권·주식을 인수할 방침이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청와대에서 긴급 회의를 갖고 대우조선 노조의 동의가 있을 때까지 4조원 규모에 이르는 자금 지원을 전면 보류키로 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우조선의 정상화를 위해 채권은행 등 관련 기관들도 손실을 감수하기로 한 만큼 노조도 강력한 구조조정에 분명한 동의를 해야 자금 지원이 가능하다”며 “금융 지원 검토는 끝났지만 주채권은행을 통해 회사와 노조에 이를 명확히 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앞서 금융 당국은 채권은행의 출자전환과 신규 자금 지원을 포함해 4조원 안팎의 정상화 지원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 지원 보류=산업은행을 대표로 하는 채권단은 지난주 대우조선 노조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임금을 동결하고 파업권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대우조선 노조는 “회사 조기 정상화를 위해서는 모든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자금 지원을 빌미로 임금 동결과 파업 포기를 약속하라는 것은 노조임을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우조선의 자금 수혈이 또다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자금 규모는 4조원으로 파악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런 약속도 없이 거액의 자금을 퍼붓는다면 도덕적 해이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노조의 동의는 최소한의 요구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조선의 자구계획이 확정되는 대로 자금을 투입, 일부 채권을 인수하고 선박 건조를 위한 담보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대우조선 노조는 “직원들의 생존권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노력해온 노조에 정부가 구조조정 동의를 요구한 것은 노동조합 포기 각서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실회계의 책임 규명은 아직 미진한 단계다. 대우조선 감사위원회는 지난달 검찰에 전·현직 임직원들의 배임 혐의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으며, 소액주주들은 회사와 안진회계법인 등을 상대로 4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8조원 규모 부실기업 구조조정=금융위원회는 업계 전반의 부실기업 정리도 서두르고 있다. 전체 외부감사대상 기업 2만5000여 업체 중 은행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 비중은 2009년 12.8%에서 지난해 15.2%로 늘었다. 내년부터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좀비기업이 급속도로 늘 수 있다는 점을 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시중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설립한 유암코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추가 출자해 여기서 부실기업의 생사를 가르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손병두 금융정책국장은 “기업이 회사채로 직접 자금을 조달하면서 은행의 역할이 축소되고, 채권은행들 사이에서도 자기 은행 이기주의 때문에 살릴 수 있는 기업도 부실화되는 부작용이 커졌다”며 “채권단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설명했다.
유암코는 좀비기업의 채권이나 주식을 인수, 신속하게 생존 여부를 가르고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우선 소규모 기업 구조조정부터 시작해 회생에 성공하는 사례가 축적되면 업종별·산업별 구조조정으로 점차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좀비기업을 인수할 종잣돈은 기존의 유암코 출자금 1조원을 1조2500억원으로 늘리고 대출 약정액도 현재 5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대폭 확대해 마련한다. 이 자금을 융통하는 과정에서 좀비기업의 채권·주식이 최대 28조원 이상 유암코를 통해 처리될 것으로 추산된다.
손 국장은 “채권은행과 가격 협상을 하면 은행은 워크아웃을 할 때보다 나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구조조정 성과가 나타나면 기관투자가나 사모펀드, 전문투자자들의 장기자금을 유암코에 유치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대우조선 ‘혈세 퍼주기’ 중단… “구조조정부터 하라”
입력 2015-10-22 21:56 수정 2015-10-23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