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제조업 55개와 서비스업 18개가 지정돼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적합업종별로 사업축소, 진입자제, 확장자제, (일부) 사업철수 등 4가지 사항 중에 1∼2개 사항을 권고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권고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외식업, 자동판매기운영업, 제과점업 등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편법 논란이 크다. 서비스업은 일반 제조업보다 영업 행태를 바꾸기 쉽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20년째 한식집을 하던 B음식점 사장은 최근 업종을 바꿨다. 보양식이라며 유명세를 탄 이 음식점은 한 달 수입이 평균 400만원이었으나 올해 초 인근에 대기업 한식뷔페가 생긴 후 매출이 20∼30% 줄었다. 한식뷔페와 메뉴가 겹친 이 음식점은 결국 20년 동안 고집해 왔던 한정식을 포기하고 지난 8월부터 닭백숙 집을 운영 중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사업진입·확장에 규제를 받은 대기업은 권고사항을 이리저리 피해 진출한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한식뷔페는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사항 틈새를 이용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한식, 중식 등 외식업 7개 업종이 적합업종이다. 하지만 계열사이거나 자가 건물일 경우 연면적 2만㎡ 이상의 대형 건물일 경우에는 음식점을 낼 수 있다. CJ푸드빌의 계절밥상, 이랜드의 자연별곡, 신세계푸드의 올반은 2013년 외식업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에도 한식뷔페 50여곳을 더 늘렸다. 현재 한식뷔페는 80여곳에 달한다. 외식업중앙회가 최근 서울과 경기지역 한식뷔페 인근 음식점 1756개를 대상으로 개점 이후 변화를 조사한 결과 45.2%인 768개 음식점의 매출이 감소했다고 대답했다. 평균 매출감소비율은 16.8%였다.
동반성장위는 2013년에 음료자판기 업종을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롯데칠성, 코카콜라 등 대기업들에 사업축소를 권고했다. 대기업들은 전체 자동판매기 수를 줄이는 대신 대학가, 병원 등 장사가 잘되는 곳에 집중 진출했다. 중소 자판기업체보다 높은 임대료를 제시해 영업권을 따내는 식이었다. 2011년 5만1524개였던 중소 자판기업체는 지난해 4만1218개로 20% 이상 감소했다. 한국자동판매기운영업협동조합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까지 대기업이 기존 중소기업보다 높은 임대료를 지급하고 대학가, 병원에 들어선 경우가 28건이다. 강진구 한국자동판매기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23일 “대기업은 매출이 적은 곳에서 철수하고 매출이 많은 곳에 10대씩 자판기를 들이는 방식을 취한다”며 “실질적으로 거래처 숫자는 줄었으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권고사항을 준수하는 대신 편법도 동원된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10월 오프라인 책 대여매장 ‘북파크’를 개장하면서 매장 안에 온라인 구매 단말기를 설치했다. ‘서점 오프라인 매장 진입 자제’라는 권고사항을 어기지 않기 위해 대여매장을 열고, 실질적으로는 책 구매가 가능하도록 하는 편법이었다. 인터파크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서련)의 항의를 받고 단말기를 철수했다. 한서련의 조사에 따르면 2012∼2013년 2년간 전용면적 165m²(약 50평) 미만 소형 서점은 238개가 감소했다.
매출 1위 업체가 규제를 받다 보니 다른 대기업 매출이 급성장하는 부작용도 있다. 지난 2011년 제과업종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업계 1위 업체인 파리크라상(파리바게트)은 공정위의 점포 출점 규제와 동반위의 적합업종으로 이중규제를 받았다. 파리크라상의 지난해 매출은 0.1% 성장에 그쳤다.
적합업종 지정 품목에서 대기업의 점유율은 지정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어묵은 2011년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됐으나 시장의 80%는 여전히 대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고추장 등 장 산업 역시 2011년부터 중기 적합업종으로 선정됐지만 지난해 대기업 점유율은 CJ제일제당, 대상, 사조해표 등 대기업이 86.6%였다. 한국장류협동조합 측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지 3년이 끝나 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업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현행 적합업종 제도만으로는 경쟁이 어렵다는 업종이 많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유통서비스산업부 손성원 차장은 “요즘 외식업과 제과업계에서는 대기업들의 꼼수가 가장 큰 이슈”라며 “매장 수를 늘리지 않기 위해 동네빵집이 문을 닫으면 명의만 다른 사람 이름으로 바꾸고 실질적으로는 대기업이 직영하는 꼼수가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중기 적합업종 실태와 과제] 대기업 ‘꼼수 진입’… 中企 설 땅 야금야금
입력 2015-10-23 21:17 수정 2015-10-25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