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도 돈·돈·돈… ‘공동구매’ 등장

입력 2015-10-22 21:52

"취업 준비한다더니 돈만 쓰고 다니니?" 지난달 한 중견기업의 신입사원이 된 양모(27)씨는 일자리를 찾는 동안 부모에게 수시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돈을 벌려고 취업을 하는 건데 취업 준비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양씨의 '취업 준비용 지출 내역'은 이랬다.

서울의 사립대를 졸업한 그가 ‘사원증’을 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이다. 이 기간 동안 기업 80여곳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했고 10여곳에서 인·적성시험을 봤다. 양씨는 기출문제가 실린 인·적성 대비 문제집을 기업별로 5권씩 샀다. 그는 “무조건 합격하겠다는 각오로 시험을 준비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매달 30만원의 용돈을 받았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인·적성 대비 문제집의 가격은 권당 1만5000∼2만원 수준이다. 기업 1곳의 시험을 준비하는데 문제집 5권을 사면 지출이 10만원에 육박하게 된다. 그렇다고 지갑을 닫을 수도 없다. 계속 취업에 실패하면서 불안감이 커지는 데다 다른 취업준비생들이 모두 기출문제집을 풀고 있는데 자신만 뒤처질 수 없어서다.

인·적성시험에서 연거푸 떨어지자 양씨는 인·적성 대비 인터넷 강의까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번에 60분 수업인 인터넷 강의를 스무 번 듣는데 들어간 돈은 12만원이었다.

기업체 한 곳의 시험 대비에만 20만원이 넘는 돈을 쓰게 됐다.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진 양씨는 결국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모아 ‘취업 공구’(취업 공동구매)를 결성했다. 문제집이나 인터넷 강의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문제집은 정답을 표시하지 않은 채 새 책처럼 돌려봤고, 인터넷 강의는 돈을 모아 결제하고 학교 강의실에서 다같이 봤다.

기업의 하반기 공개채용 시즌을 준비하는 박모(28)씨도 ‘취업준비 비용’에 허덕이고 있다. 인·적성 문제집은 물론이고 취업 대비 스터디모임 때문에 매일 가는 스터디카페 비용도 부담스럽다. 지난해 대학교를 졸업한 박씨는 “취업준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 취업을 준비할 시간이 없고, 취업을 준비하자니 돈이 없다”며 “돈 없는 사람은 취업 준비조차 어렵다”고 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4월 취준생 16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은 돈을 내고 취업정보를 얻은 경험이 있고 평균 26만9000원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 35%는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취준생들은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혼자 준비하는 것이 불안해서 지갑을 열었다고 답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취업시장에서의 부정확성이 취업준비생들을 불안하게 하고 많은 돈을 들이게 한다”며 “기업이 추구하는 인재상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 취업준비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