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던 서울시 지명위 회의록 버젓이 있었다… 봉은사가 개입한 설문 근거로 역명 결정한 정황 드러나

입력 2015-10-22 19:41 수정 2015-10-22 22:08
국민일보가 22일 입수한 ‘2014년 봉은사역 관련 서울시 지명위원회 회의록’. 회의록에 따르면 지명위원들은 조작된 설문조사를 토대로 회의를 진행했으며 역명을 봉은사역으로 확정했다.

서울시가 서울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명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교계 인사들에게 지명위원회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서울시는 봉은사가 조직적으로 개입해 조작했던 설문조사를 근거로 역명을 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봉은사역 관련 회의록 있는데도 “없다”고 거짓말=본보가 22일 입수한 4쪽 분량의 ‘2014년 봉은사역 관련 서울시 지명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지명위원회의 회의록은 작성·비치돼 있었다. 회의록은 서울시지명위원회 조례 제9조에 따라 서울시 공무원이 직접 작성한다.

그런데도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김인환 서울 강남교구협의회장과 윤성원 부회장,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 등이 지난 3월 박원순 시장을 항의방문했을 때 “회의록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당시 교계 인사들은 “서울시가 봉은사의 역사성을 고려한다며 역명을 봉은사로 했다”면서 “미래지향적인 서울시가 과거 몇백년 전 이름을 역명으로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며 박 시장을 추궁했다. 교계 인사들로부터 질타를 받은 박 시장이 배석했던 윤종장 교통기획관에게 “지명위원회 회의록이 작성돼 있냐”고 질문하자 윤 교통기획관은 “회의록은 작성을 안 합니다”라고 둘러댔다.

결과적으로 윤 기획관은 교계 인사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고, 동석한 박 시장도 지휘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봉은사가 개입된 설문조사를 근거로 봉은사역명 확정=서울시의 실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명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역명과 관련된 논의는 조작된 설문조사를 근거로 진행됐다. 첫 단추부터 잘못돼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1월 봉은사는 역명 관련 주민 선호도 조사 때 사찰 홈페이지와 설문조사 홈페이지를 연동시키며 여론을 조직적으로 조작했다. 1차 조사 때만해도 역명후보로 1위를 달리던 코엑스가 2위로 주저앉은 것은 이처럼 조작된 여론조사 결과 때문이었다.

회의록을 보면 서울시 교통정책과장은 “여론 조사한 결과는 강남구를 대표하는 봉은사가 있기 때문에 주민 선호도 조사 60%로 ‘봉은사역으로 하자. 다만 코엑스도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코엑스로 처음부터 병기를 하자’ 이게 첫 안으로 왔다”고 보고했다. 이후 9명의 위원들은 토론을 벌여 봉은사역을 단독 역명으로 결정했다.

한편 코엑스역명추진위원회는 20일 1만2931명의 서명을 받아 역명 개명을 위한 청원서를 강남구청에 접수했다. 김상호 역명추진위원장은 “일본군 전몰장병 충령탑이 건립되고 전몰장병의 명복을 비는 천도제까지 열렸던 친일사찰이 대한민국 심장부의 역명이 됐다”면서 “박 시장은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라도 역명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cafe.naver.com/coexstation).

글·사진=백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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