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버린 프로포폴 재사용… 환자 쇼크 사망

입력 2015-10-22 22:33
쓰고 버린 마취제를 환자에게 다시 사용해 죽음에 이르게 한 성형외과 의사와 간호사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오염된 약물 투여로 환자가 응급 상황에 빠졌지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안면지방이식 수술을 받는 여성 환자에게 이미 폐기했던 프로포폴을 ‘재사용’해 패혈성 쇼크 등을 일으켜 죽거나 다치게 한 혐의(중과실치사상 등)로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의사 정모(37)씨와 간호사 장모(2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안면지방이식은 허벅지 등에서 지방을 떼어내 얼굴에 이식하는 수술이다. 얼굴의 탄력을 높여준다고 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 ‘동안 수술’로 불리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지난 2월 안면지방이식 수술을 위해 병원에 찾아온 중국인 관광객 곽모(20·여)씨와 내국인 김모(29·여)씨에게 폐기된 프로포폴을 투여했다. 성형수술 마취제로 쓰이는 프로포폴은 마약류로 분류돼 제약사에 미리 물량을 주문해야 한다. 환자가 몰려 재고가 떨어지자 정씨 등은 의료폐기함에 버린 지 1주일 이상 된 프로포폴 바이알(주사용 약병) 빈병을 모아 그 안에 남은 프로포폴로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 직후 곽씨는 박테리아에 감염돼 고열과 저혈압 등 이상증세를 동반한 패혈성 쇼크를 일으켰다. 곧바로 대형 병원으로 옮겨진 곽씨는 다행히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 의료진은 이틀 뒤 병원을 찾은 김씨에게도 똑같이 오염된 프로포폴을 투여했고, 비슷한 후유증을 보인 김씨는 대형 병원에 이송됐지만 다기관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응급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의료진은 손을 놓고 있었다. 의사 정씨는 환자들이 이상증세를 보이자 간호사 장씨에게 후송을 떠맡기고 다른 수술에 들어갔다. 장씨 역시 의료장비가 갖춰진 응급차량이 아니라 개인 차량에 환자들을 태웠고, 후송 도중 수액과 산소공급 등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아 병세를 악화시킨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들이 다른 환자들도 폐기된 프로포폴로 수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해당 병원은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