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 별세] ‘미인도’ 위작 논란에 절필 선언… 美로 떠나

입력 2015-10-22 22:48

“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고 자기를 아끼고 초연이 살고자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살이다.”

천경자 화백은 1985년 자서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이처럼 그에게는 화가로서, 자연인으로서 내내 스캔들이 따라다녔다.

최대 스캔들은 91년 ‘미인도(사진)’ 위작 논란이다. 국내 미술계 최대 위작 시비로 꼽힌다. 당시 67세였던 그는 충격을 받아 붓을 내려놓았다. 논란은 1991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경자 작품에 대해 천 화백이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하며 비롯됐다. 어깨에 나비가 앉은 이 여성 인물화와 관련해 국립현대미술관은 제작연도부터 소장경위 등을 추적해 진품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 판매사건으로 구속된 위조범 권모씨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재차 진품이라고 반박했고, 한국화랑협회는 진품이라는 감정을 최종 내렸다.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반발했던 천 화백이 결국 한국을 떠나 뉴욕으로 가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98년 이후 미국에서 살며 잊혀졌던 그는 자연인으로서는 치욕인 생존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3년 뇌출혈로 쓰러져 소식이 끊겼고 지난 10여년간 천 화백을 만났다는 사람이 없자 지난해부터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한민국예술원은 회원인 천 화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2014년 뉴욕에서 그를 보살펴온 큰딸 이혜선(71)씨에게 의료기록 제출을 요구했다. 이씨는 명예훼손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예술원은 회원(현재 87명)에게 주는 월 180만원의 수당 지급을 중단한 바 있다. 천 화백 가족은 이에 반발해 탈퇴서를 제출했다.

기증 작품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기증 작품으로 종합문화회관 내에 천경자전시실을 마련한 전남 고흥군은 2012년 가족이 관리 소홀을 문제 삼자 60점을 반납한 바 있다. 올 들어 서울시립미술관의 외부 대여 전시가 중단되기도 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