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그림산책] 조용한 기다림 담긴 한국적 겟세마네

입력 2015-10-23 22:08
이명의(1925∼2014) 작가의 '겟세마네'(1973)
올해는 기독교미술인협회가 창립(1965)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한국기독교미술 50년전’이 열렸고 이어 ‘한국 현대 기독교미술 50년 심포지엄’이 오는 29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달 인사동 ‘갤러리 미술세계’에서 열린 50년전은 기독교미술인 200여명이 참여한 큰 미술잔치였다.

거기에는 박수근, 이연호 화가목사, 홍종명, 황유엽과 같은 고인이 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에 고 이명의 작가의 ‘겟세마네’는 내게 조용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어서인지 절박하고 극적인 서양의 만테냐(1431∼1506)나 벨리니(1427∼1516)의 ‘겟세마네 언덕의 고뇌’ 그림과 다른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동산도 아니요 기도하는 모습도 땀이 흠뻑 젖은 예수님이 아니다. 조용히 묵상하듯이 앉아 있는, 이미 격렬한 자기 갈등의 순간을 지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정적이 드리워져 있다. 두 개의 커다란 올리브 나무를 배경으로 한 이 위기의 순간이 오히려 은총 가득 찬 평화에 깊이 잠겨있지 않은가.

이 그림은 내게 ‘한국화와 서양화의 구별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보통은 그 구별기준을 사용하는 재료로 구분하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재료적 구분은 무의미해진지 오래다. 그러면 동·서양 또한 한국적 그림과 서양의 그것이 어떻게 무엇으로 다를까. 나는 이명의의 이 그림을 보면서, 두 장르의 구별은 결국 표현의 정서, 동양적 정서나 표현, 해석일 것인가 아니면 서양적인 것인가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그림은 또한 그가 조용히 뒤에서 기독교미술인협회의 출범을 도왔던 성품을 떠올리게 했다. 기실 이연호 목사가 주도하여 협회를 창립했지만 그를 도와 실질적인 잔심부름과 안살림의 일을 감당한 분은 이명의 작가라고 한다. 그의 아들 이열의 말에 따르면 항상 겸손을 강조하고, 그것이 가훈이 되다시피 했다고 힘주어 말한다. 화단에서는 ‘변방의 화가’라고 까지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고난 속에서 예비되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도 절실히 깨달아 삶에 체현하고 있었다.

집이 가난하여 미술학교도 가지 못하고 목수 일을 하게 되었으나, 끝내 홍대에 들어갔고 1943년에는 선전에도 입선하였다. 청년시절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폐병에 걸렸으나 이를 이겨냈다. 당시로서는 모험적 시도라고 할 향린미술학원을 설립하여 입시학원의 효시로 많은 미술지망생들을 명문학교에 보냈다.

그래서 그의 친구 홍종명은 그를 가리켜 “어리석은 듯 하면서도 내면에 현명함을 지닌 사람”이라 하였다. 물론 그는 학원 경영자로 자신의 모든 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바치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했으나 60세 이후에 끊임없이 그렸다. 그는 추상을 추구하였으나 노년에 가면서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오고 갔으며, 말년에는 예수님의 변하는 얼굴 표정을 그려 집합하는 ‘우리들의 예수님’ 연작을 즐겨 그렸다.

‘근본적으로 미술은 하나님의 상징’이라는 이연호 목사의 생각에 그도 크게 공감하였다. 조용한 정적의 그림 속에도 고난의 체험이 담겨있다는 이 목사의 그림 평 또한 예리하다. 그의 미술작업 태도는 자신이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답을 얻기 위해 내 잠재의식 속에 내장된 무의식의 무한한 세계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말은 미술인들조차 곱씹어 볼 정직함이 아닌가 싶다.

이석우(겸재정선미술관장·경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