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취재차 들렀던 프랑스 파리에서의 며칠은 ‘파리지앵’에 대한 그동안의 환상을 여지없이 뭉개버렸다. 파리가 어떤 곳인가. 거리는 낭만과 예술이 넘쳐나고 ‘남에 대한 배려’를 의미하는 ‘톨레랑스’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입성 첫날부터 거리를 뒤덮고 있는 담배꽁초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인도와 차도는 물론 공원, 유명한 관광지 주변까지 담배꽁초로 점령돼 있었다. 파리 전체가 한마디로 ‘거대한 재떨이’였다. 오가는 시민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담배를 물고는 거리낌 없이 버렸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파리 시내를 걸을 때는 시선을 ‘15도 위’로 맞추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 건가.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흡연율은 25%였다. 인구의 4분의 1이 흡연자인 셈이다. EU 국가 가운데 흡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프랑스 정부는 높은 흡연율 때문에 일찌감치 금연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먼저 담뱃값을 여러 차례 인상했다. 특히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담배 가격을 40% 올린 후 담배 판매는 30% 이상 줄었다. 현재 담뱃값은 갑당 7∼9유로(9000∼1만1000원)다. 우리나라보다 배 이상 비싸다. 2008년엔 공공장소뿐 아니라 술집, 식당에서 전면 금연을 시행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금연정책 때문에 흡연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면서 담배꽁초를 밖에다 버리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담뱃갑에 경고그림과 경고문구도 도입했다. 파리의 담배가게 ‘타박(Tabac)’에서 파는 담뱃갑 앞면을 보니 무시무시했다. 시커먼 암덩이가 목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후두암 환자, 심장혈관 수술을 하는 장면, 누렇게 변색되고 썩어버린 치아 등의 그림이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뒷면에는 ‘흡연하면 죽는다(Fumer Tu?)’는 직설적인 문구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흡연자들이 흔히 말하는 ‘담배 맛’이 뚝 떨어질 법하다.
프랑스는 나아가 담뱃갑을 ‘단순포장(Plain packaging)’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담뱃갑에 제조사 상표를 없애고 크기와 모양, 색깔, 활자 등을 모두 같게 하는 담배포장 규제 법안이 지난 4월 하원에서 가결돼 상원을 통과하면 내년 5월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담배 경고그림과 함께 젊은층의 금연을 적극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파리시는 ‘담배꽁초와 전쟁’을 선포했다. 이달 초부터 담배꽁초 무단 투기자에 대한 벌금을 대폭 올렸다. 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면 68유로, 약 8만7000원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벌금을 기한 내에 내지 않으면 180유로, 약 23만원으로 늘어난다. 전에는 벌금이 35유로였으니 배로 는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는 수년째 금연정책의 수위를 높여오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금연정책은 더디기만 하고 효과 논란도 일고 있다. 올 초 담뱃값 인상으로 반짝 감소하던 담배 판매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세수만 늘리고 금연 효과는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또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올해 상반기 중 추진키로 했던 ‘편의점 내 담배광고 금지를 위한 담배사업법 시행령 개정’은 1년이 다 돼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정부의 금연정책 의지가 의심된다. 우여곡절 끝에 내년 12월 도입키로 한 담배 경고그림은 ‘덜 혐오스러운 그림’을 넣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아 논란이 됐다. 앞으로 활동하게 될 ‘담배 경고그림 제정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넣으나마나한 경고그림은 효과가 없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흡연율은 프랑스와 비슷한 24.2%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세상만사-민태원] 흡연과 전쟁하는 프랑스
입력 2015-10-22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