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채수일] 엑소더스

입력 2015-10-22 18:56

올 9월 말까지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들어온 난민은 63만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민의 절반은 어린이입니다. 지난 9월 2일 시리아 난민이던 세 살 된 어린이 에일란 쿠르디가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된 한 장의 사진은 전 세계를 분개시켰고, 난민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난민수용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변화가 있었지만, 동시에 반난민 정서가 유럽사회의 우경화와 함께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덴마크 총선에서 이민 반대를 내세운 극우정당 국민당이 제2당 자리를 차지했고, 스위스에서는 10월 18일 치러진 총선에서 반이민 극우정당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독일에서는 지난 10월 18일 쾰른시장 선거에 나선 무소속 엔리에케 레커(59·여)가 유세 도중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한 남성에 의해 칼에 목이 찔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비교적 난민에 관대했던 독일도 이제는 ‘난민 쓰나미’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난민이 일자리를 빼앗고 있고, 세금도 내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확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난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은 이민을 받지 않는 나라는 일본처럼 경제가 정체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다키지와 사부로 유엔난민기구 전 주일 대표는 시리아 난민은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이가 많기 때문에 특히 독일이 이들을 미래 노동력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시각과 평가가 어떻든 전쟁, 정치적·경제적 불안정,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와 식량난 등은 난민을 더 양산할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지구촌 엑소더스가 시작된 셈입니다. 첫 번째 엑소더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사건에 비하면 지금의 엑소더스는 그 규모와 성격의 복잡성 때문에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이집트로부터 가나안으로의 이주는 지역의 문제였으나 지금은 지구촌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탈출은 종교적 문제였지만 현재의 엑소더스는 전쟁과 내전, 정치적·종교적 문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앙 등 그 원인과 규모와 성격이 현저히 다릅니다. 중동지역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북동부와 남부는 60년 만의 슈퍼 엘니뇨로 대가뭄과 식량난으로 시달리고 있고, 동아프리카 지역은 홍수가 예보돼 말라리아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문명사와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난민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해결될 수 있을까요. 지역 분쟁과 내전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 인도적 지원으로 가난과 기근을 해결하는 일, 교육과 위생시설 확보 등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일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나그네와 거류민의 역사였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축제를 통해 400여년간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과 나그네 삶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역사적 체험은 다른 나그네와 이주민에 대한 사랑과 연대로 구현되어야 했습니다. ‘외국 사람이 나그네가 되어 너희의 땅에서 너희와 함께 살 때에, 너희는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사는 그 외국인 나그네를 너희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그를 너희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 살 때에는 외국인 나그네 신세였다.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렘 19:33∼34)

역지사지가 난민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만큼은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가 말한 것처럼 주께서 우리를 고향으로 인도하실 때까지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 위에 흐르는 시간의 파도에 밀려 표류한 사람들’이 아닐까요.

채수일 한신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