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으로 전국이 타들어가고 있다. 특히 충남 서해안 일부 지역은 씻을 물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전국의 주요 댐과 저수지는 속속 바닥을 드러내며 가뭄에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100년을 내다보는 수자원 관리 대책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인데 1인당 물 사용량은 과도하게 많다. 이렇게 물을 펑펑 쓰면 아무리 많은 댐과 저수지를 건설해도 늘 물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국민일보는 시리즈를 통해 전국의 가뭄 실태와 물을 펑펑 쓰는 국민 의식, 수자원 관리 정책 등을 점검하고자 한다.
“언제까지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만 원망해야하는지 모르겠네유.”
지난 19일 오후 찾아간 충남 보령댐은 거북등처럼 갈라진 바닥을 드러냈다. 오랜 가뭄으로 보령댐 상류지역은 바닥에 수초가 무성하게 자라 풀밭으로 변해 있었다. 댐 건설 당시 있었던 좁은 길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인근 계곡은 실개천으로 변해 있었다. 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이란 말을 피부로 와 닿았다.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보령댐 상류지역인 보령시 미산면 풍계리 주민들은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지역은 지난 5월부터 하루 4시간만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온다. 마을 주민 80여명은 오전 6∼8시, 오후 5∼7시 하루 두 차례 간이상수도를 통해 물을 쓸 수 있다. 그 시간에 수조에 물을 담아둬야 한다. 이 마을 주민들이 주로 먹는 물로 쓰는 4m 높이의 간이상수도 물탱크(30t)는 3분의 1만 남아 있었다.
풍계리 이고우(63) 이장은 “1998년 보령댐이 준공된 후 식수가 부족한 것은 이번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풍계리 권영희(53) 부녀회장도 “집집마다 물통 서너 개를 두고 생활하고 있다”며 “빨래는 한번에 모아서 아침에 하고 먹고 씻을 물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보령댐은 충남 서북부 지역 유일한 광역상수원으로 서산·당진·홍성 등 8개 시·군에 사는 48만명에게 하루 20만t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현재 저수율은 20.7%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지난 8일부터 이들 시·군에는 평소보다 20% 감소한 16만t이 공급된다. 전국 19개 다목적댐 중 충남지역에는 보령댐이 유일하다.
현재 저수율이 36.6%인 대청댐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청호 상류지역의 호수 연안마을은 생계수단인 어업이 오래전 중단됐다. 수위가 낮아지면서 수초가 줄어 물고기가 산란을 하지 않거나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어획량은 예년의 20%에 불과하다.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오대리는 대청호의 수위가 내려앉으면서 유일한 교통수단인 뱃길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11가구 14명이 사는 이 마을은 선착장의 접안시설이 땅 위로 드러나면서 배를 댈 수 없게 됐다. 주민들은 300m 떨어진 수심 깊은 곳으로 이동해 가까스로 배를 운항하고 있다.
오대리 윤정희(57) 이장은 “올해 새로 접안시설을 설치했는데 무용지물이 됐다”며 “지금 상태라면 머지않아 뱃길이 막힐 것 같다”고 걱정했다.
저수지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고갈됐고 잡초만 무성하다. 충남지역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32.6%, 충북은 42.6%에 머물고 있다.
충남 태안 송현·죽림 저수지 등 여러 저수지에 서식하던 말조개는 집단 폐사하고 있다. 조갯살은 이미 썩거나 속이 텅 비었고 폐사한 말조개들이 입을 벌린 채 갈라진 저수지 바닥에 널려 있다. 송현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낸 것은 1982년 저수지 준공 이래 처음이다.
저수지에 물이 말라 농작물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간척지인 충남 서산 천수만 B지구(3173㏊)는 잎 마름 증상으로 벼농사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이곳에서 농사짓는 농민 470여명은 가뭄으로 인한 생육 부진, 염분농도 증가 등으로 벼가 말라죽거나 품질이 크게 하락하는 피해를 입었다.
천수만 A·B지구 경작자연합회 이종선(68) 회장은 “담수호인 간월호와 부남호에 물이 부족해 올해 수확한 벼 대부분이 도정을 할 수 없는 낮은 등급을 받았다”며 “정부는 품질이 떨어진 벼를 수매하고 가뭄 피해를 농업재해로 지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충남 부여에서 콩과 깨 등 밭작물을 재배하는 김응순(63)씨는 “올해 비가 오지 않아 속이 텅 빈 쭉정이만 나오고 있다”며 “물이 없어서 사람도 힘든데 작물은 오죽하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령=글·사진 홍성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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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治水가 길이다] 보령댐 인근 4시간만 급수… “먹고 씻을 물도 부족”
입력 2015-10-21 2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