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둘째 날인 21일 오후 4시(이하 북한시간) 북측 최고령 상봉자인 아버지 이흥종(88)씨의 노랫소리가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단체상봉장을 채웠다. 남측의 딸 정숙(68)씨가 “이번에 돌아가면 아버지 목소리 기억 못해요. 노래 불러주세요”라고 말하자 주저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딸은 취재진이 테이블에 올려뒀던 무선 마이크를 집어 아버지 앞에 놓은 뒤 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불렀다. 아버지와 딸의 노래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또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가 부른 노래 제목은 ‘꿈꾸는 백마강’이라고 했다. 남동생 인경(62)씨는 “어렸을 때 부르던 노래라는데, 가사를 하나도 안 까먹으셨어”라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마친 딸은 “아빠, 어떻게 가사도 다 기억해. 아빠 노래 잘하시네”라고 했다.
화기애애했던 상봉장은 행사가 끝나는 오후 6시가 다가오면서 점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오인세(83)씨는 남에서 온 아내 이순규(85)씨에게 “사랑해”라며 60여년간 아껴왔던 고백을 했다. 이씨가 “‘사랑해’라는 (말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알아요? 사랑이라는 두 글자의 범위가 얼마만큼 넓은지 모르는구먼”하고 쏘아붙이자, 남편은 아들 장균(65)씨를 바라보며 “처녀 총각 만나서 좋으면, 생사고락 함께하는 게 사랑이지”라고 답했다. 행사가 끝나자 오씨는 북측 안내원의 재촉을 받으면서도 아내를 돌아보며 “내일 작별상봉 때 봅시다”라고 했다. 아내는 떠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첫 만남의 감격에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했던 가족들은 이튿날부터 안정을 되찾은 듯했다. 서로 알아보지 못했던 가족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지난날을 되새겼다. 오후 행사에선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볼 정도가 됐다.
전날 처음 만난 가족들은 앞서 오전 9시 숙소인 금강산호텔에서 재회했다. 모든 참가 가족들이 한 상봉장에서 단체로 만나는 단체상봉과 달리 개별상봉은 가족별로 한 방에 모여서 진행됐다. 행사는 비공개로 진행돼 가족들은 더욱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윤인수(59)씨와 이민희(54·여)씨는 북에서 온 삼촌 도흥규(85)씨에게 “삼촌 또 봐요. 이산가족 상봉 신청 또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도씨는 조카들에게 고개를 저으며 “삼촌이 나이가 많아서 또 볼 수 있겠어”라고 했지만, 이씨와 윤씨는 재차 “삼촌, 또 봐요”라고 했다. 윤씨는 “어제는 삼촌이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잘 못했는데 오늘은 사근사근 잘 얘기하셨다”고 했다.
북측 양만룡(83)씨의 조카 령례(67·여)씨 또한 “(오늘 또 보니)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마음을 여니까”라고 말했다. 양씨 가족들은 삼촌이 조카들에게 짧은 글귀를 남겨줬다고 전했다. ‘가족끼리 친절하게 잘 살아라. 잘 왕래하면서 살아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2시간의 비공개 개별상봉이 끝난 지 1시간쯤 지난 낮 12시에는 금강산호텔 식당에서 공동중식 행사가 열렸다. 북에서 온 형 김주성(85)씨와 남에서 온 동생 주철(83)씨는 식사 중에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손수건을 꺼내들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대동강맥주를 따른 잔을 비웠다. 동생이 “이렇게 고생만 해서 어떻게 해. 호강을 해야 하는데…”라고 말하자, 형은 동생 얼굴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건강해야 한다”라고 했다.
상봉 둘째 날에는 북측 여성 접대원들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앳된 얼굴의 접대원 50여명은 금강산호텔 2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오전 10시부터 식사 준비에 분주했다. 오찬장에 들어서던 한 할머니는 노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 접대원을 보더니 “곱다”며 등을 쓰다듬었다. “언제 이런 미인과 사진을 찍겠느냐”면서 북측 접대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가족도 있었다.
한 접대원은 식사에 제공된 ‘배향단물(배맛 주스)’을 설명하면서 “북측은 북에서 나는 고유의 맛으로 대접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전날 만찬에서 남측이 콜라를 제공한 걸 언급하며 “(남측 음식은) 자연의 맛이 아니다. 첨가하는 물질이 많다. 처음에는 모를 수 있지만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고도 했다.
조성은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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