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파·양은이파·OB파… 그들의 끈질긴 생존법] 쇠락하던 ‘3세대 조폭’ 돈냄새 맡고 바다 건넜다

입력 2015-10-21 21:39 수정 2015-10-22 08:41

지난달 입국 직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된 광주송정리파 조직원 이모(40·구속기소)씨는 원래 실패한 성인오락실 업주였다. ‘알라딘골드’와 ‘바다이야기’가 더 이상 조직의 자금줄 노릇을 하지 못하면서 그는 마카오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도박·마약·성매매는 구세대 폭력조직의 소득원이다. 신흥 조직은 건설업과 경매, 주식과 유통업에 뛰어들고 있었다.

도박장은 그렇게 조폭의 구식 영업수단이었지만 해외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이씨가 본격적으로 ‘정킷(junket·원정도박 알선)방’ 일을 배우던 2011년을 전후로 마카오 도박시장은 무섭게 성장했다. 국내에서 사행산업이 양성화되면서 이름을 감추고 싶어 하는 유명인사는 늘었고, 고객 장부가 풍성해진 이씨는 마카오 정킷방의 1인자로 우뚝 섰다.



3세대 조폭, 바다를 건너다

낭만파 주먹과 정치깡패에 이어 ‘3세대’로 분류되는 폭력조직 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은 그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위 ‘3대 패밀리’(서방파·양은이파·OB파)가 금융과 부동산 등에서 조직적 차원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고 파악했다. 지방 주요 폭력조직의 간부급 연령이 대부분 40대를 넘어 활동이 위축된 상태라는 분석도 이어졌다.

바야흐로 합법적 재화(財貨)를 활용하고, 조직 규모를 가볍게 하면서 나이는 어려진 ‘4세대’ 폭력조직이 전면으로 나온 때였다. 대검찰청이 지난해 폭력조직 연관 기업·업소 383곳을 분석한 결과도 이런 변화를 말해줬다. 383곳 가운데 폭력조직의 전통적 자금줄인 유흥업소는 173곳(45.2%)으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일반음식점, 건설·제조·부동산업, 유통업과 서비스업 등이 많았다. 광고·프랜차이즈업을 운영하는 폭력조직도 있었다.

이렇게 소득원 찾기에 실패해 쇠퇴한 줄로만 알던 3세대 폭력조직은 바다 건너로 무대를 옮겨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4월 해외 원정도박 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심재철)는 필리핀과 캄보디아, 마카오 등에서 정킷방을 운영한 범서방파와 영산포파(범서방파 계열), 학동파(양은이파 계열) 조직원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충장OB파 조직원에 대해서도 지명수배를 내렸다.

3세대 폭력조직들이 구식 아이템으로 사업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도박 수요의 급증 때문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폭력조직은 돈줄을 찾아 움직이는 법”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 등 내국인 도박사업이 합법화됐지만 출입일수 제한이 싫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이들은 거꾸로 비행기를 탔다. 항공권과 체재비를 준비한 브로커들이 터를 닦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의 큰 고객이었던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50) 대표는 마카오와 필리핀 등지에서 100억원대 해외 원정도박을 한 혐의(상습도박)가 드러나 21일 구속 기소됐다.



3시간만 날아가면 ‘별천지’

검찰 수사대상은 필리핀과 캄보디아, 베트남에까지 걸쳐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여 거리에 있는 마카오의 도박 규모가 가장 크다. 미국 통계포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마카오 지역의 도박 수익은 2007년 103억8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441억6000만 달러로 7년 만에 4배가 됐다. 블랙잭과 룰렛, 텍사스홀덤 등 운에 의존하는 게임으로만 벌어들인 돈이다.

스태티스타는 “마카오에는 총 35곳의 카지노가 있는데 ‘VIP 바카라’가 벌어진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씨 등이 활동하던 정킷방에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 바로 무한대 베팅이 가능한 VIP 바카라다. 순식간에 종자돈을 잃은 고객들은 3세대 폭력조직에 많은 빚을 졌고, 혹독한 추심에 고생했다는 것이 검찰 수사로 밝혀지고 있다. 이씨가 다수의 원정도박자들을 안내했던 MGM호텔은 카지노업계에서 세계 최대 규모라는 평가를 받는다. MGM호텔 계열 카지노에서 벌어진 도박은 지난해에만 100억8000만 달러어치다.

마카오 카지노업계의 급성장에는 한국인들이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서원석 교수에 따르면 1200명 안팎 수준인 한국인 ‘VIP 원정도박자’가 마카오 전체 도박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다. 1950명의 VIP를 포함해 한국인 22만3219명이 연간 2조929억8916만원을 마카오와 필리핀에서 쓴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는 4년 전인 2011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조사한 내용이다. 원정도박자 규모가 훨씬 늘었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서 교수는 매년 22만여명에 이른 한국인 원정도박자 가운데 60%가 마카오로, 30%는 필리핀으로, 10%는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고 본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브로커들에 이끌려 정킷방으로 안내된다. 이들이 뿌리고 온 돈은 폭력조직의 자금이 되고, 공갈·협박 등 부수범죄를 야기한다. 국가적인 재정 유출이라는 부작용도 낳는다. 서 교수에 따르면 원정도박의 30%만 감소하면 해외에서 손실되는 국부가 7000억원가량 줄어든다. 이 금액이 국내에서 합법화한 사행산업으로 흡수된다고 가정하면 국가 재정수입은 3143억원 증가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