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중반의 미국 여행 작가 폴 서루는 지난 50년간 여행하는 삶을 살았다. 40년 넘게 여행기를 써왔고, 아마도 50년 이상 여행기를 읽어왔을 것이다. 지금까지 10여권의 여행서를 출간했는데, 1975년에 쓴 그의 첫 책 ‘유라시아 횡단 기행’을 비롯해 ‘아프리카 방랑’ ‘중국 기행’ 등 3권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
폴 서루에게는 ‘여행문학의 거장’이란 명예로운 호칭이 붙어 있다. 외국 독자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라고 불리는 빌 브라이슨 만큼 유명하다고 한다. 전 세계 어느 공항에 가든 그의 여행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책을번역하기도 했다.
‘여행자의 책’은 폴 서루가 쓴 또 하나의 여행기가 아니다. 폴 서루가 편집한 여행이라는 주제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이 다루는 것은 어떤 여행이 아니라 여행기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장르 중 하나인 여행기의 숲으로 떠난 여행기라고 할까. 폴 서루는 모든 뛰어난 작가들이 그렇듯이 작가이기 전에 독자였다. 동서고금의 유명한 여행기들을 두루 읽었고, 그 속에서 좋은 문장들을 골라내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긴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책은 ‘얼마나 오래 여행하는가’ ‘여행의 동반자들’ ‘당신이 이방인일 때’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위험한 장소들, 행복한 장소들, 매혹적인 장소들’ 등 여행과 관련된 25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1장 제목은 ‘여행이란 무엇인가’인데, 40페이지 분량을 온전히 여행기에서 따온 인용으로만 채웠다. “여행은 편견, 완고함, 편협함에 치명타를 날린다”(마크 트웨인), “여행은 살면서 경험하는 가장 슬픈 기쁨 중 하나이다”(슈타엘 부인), “관점은 여행을 떠나야 비로소 변화한다”(제임스 볼드윈) 등과 같은 아포리즘이 이어진다. 폴 서루 본인의 책들에서 인용한 부분도 상당하다. “낯선 도시의 익명의 호텔 방은 사람을 고백하고 싶은 상태로 만든다” “오랫동안 떠난 당신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온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만을 생각하라. 이것이 여행의 이론이다”….
폴 서루가 이 책에 등장시키는 책과 작가들을 보노라면 여행기라는 세계가 얼마나 깊고 풍성한 것인지 새삼 놀라게 된다. 아프리카를 가로지른 헨리 모튼 스탠리,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 에베레스트 등정가 존 크라카우어 등 유명한 모험가들만 나오는 게 아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D. H. 로렌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안톤 체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서머싯 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앙드레 지드, 찰스 디킨스, 조지 오웰 등 유명 작가들이 그들이 쓴 여행기와 함께 불려나온다.
폴 서루는 이들을 자유자재로 불러내 이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이어가면서 여행이라는 행위에 깃든 의미와 무의미, 경이와 슬픔, 열망과 공포, 오해와 진실, 환상과 현실 등을 탐구해 나간다. 그는 관광객과 여행자를 구분하면서 “여행은 휴가가 아니며, 대개는 휴식의 정반대이다”라고 말한다. 또 혼자 하는 여행을 옹호하면서 여행에서 고독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외로움이라는 마법은 여행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외로움은 어떤 일이 일어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비행기 여행을 경멸하는 대신 “기차에 탄다는 것은 그 나라의 국민성과 맞부딪히는 일이기도 하다”면서 기차 여행을 열정적으로 예찬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고전으로 분류되는 유명 작가들의 여행기에 숨겨진 뒷얘기들도 슬쩍 알려준다. 프란츠 카프카는 소설 ‘아메리카’를 남겼지만 실제로 그는 프라하에 있는 그의 집으로부터 서쪽으로 프랑스 이상 간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타잔’ 이야기를 쓴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역시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적이 없었다. 또 소로는 고독의 결정판이라고 할 ‘월든’을 썼는데, 그의 호숫가 통나무집은 집에서 겨우 2㎞ 떨어져 있을 뿐이었고 대부분의 날 소로는 월든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폴 서루가 여행기들의 숲을 여행하면서 결국 닿고자 했던 지점은 ‘진정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그는 긴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영국 작가 피코 아이어가 ‘우리는 왜 여행하는가’에 쓴 문장이 그의 생각을 잘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훌륭한 여행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옮겨져 공포와 경이의 한가운데에 놓이는 것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여행기의 숲으로 떠나는 여행
입력 2015-10-22 20:09 수정 2015-10-27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