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당정, 저출산·고령화 대책] ‘예산 절감’ 효과 감안한 학제 개편… 도입 쉽지 않을 듯

입력 2015-10-21 20:42 수정 2015-10-21 20:45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2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당정협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과 정부가 21일 저출산·고령화 대책으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을 검토하기로 했다. 학업을 일찍 마치고 일찍 취업해 결혼과 출산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궁극적으로는 경제활동인구를 늘려 정부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하지만 현 교육체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3∼5세 누리과정까지 손봐야 하는 일이어서 당장 실행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거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이를 검토했으나 힘 있게 추진하지 못했다.

◇무상보육 예산 줄고, 연금 고갈 늦추는 효과=당정협의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앞당기자는 말을 꺼낸 사람은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이다. 그는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측 참석자들에게 구두로 이를 제안했다고 한다. 학제에 관한 주무 부처인 교육부 관계자는 자리에 없었다.

김 의장의 제안에는 인구 논리뿐 아니라 재정 논리가 숨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나이가 낮아지면 경제활동인구가 많아진다. 정부로서는 인구 감소와 함께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세수 확보에 도움이 된다. 현재 3∼5세 누리과정 무상보육에 들어가는 예산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취업 시 국민연금에 자동 가입되므로 연금재정 고갈을 늦추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이런 재정효과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오래전부터 입학 연령을 낮추는 데 적극적인 입장이었다. 기재부는 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관련 실무 논의에서도 이를 주장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논의가 이뤄졌으나 전문가 사이에 이견이 있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말 2015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는 입직 시기를 6개월 앞당기는 효과가 있는 ‘가을학기제’를 제안했다. 아직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과거 정부 추진했지만 실패=노무현정부도 2007년 ‘비전 2030’에서 ‘만 5세 초등학교 취학 방안’ 또는 ‘초등학교 유아학년제(K학년) 도입’을 검토했지만 학계의 반발로 중단했다. 이명박정부에서는 미래기획위원회가 2009년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학제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아 실무 부처 차원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후 3∼5세 무상보육 체계인 누리과정을 도입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입학 연령을 낮추는 것이 아동의 발달 단계를 고려할 때 좋지 않고 다른 나라의 학제와도 맞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신은수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학교에 일찍 들어가면 사교육비가 오히려 더 들고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면서 “공부 잘하는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오히려 우리보다 한 살 늦게 입학한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에서 미래기획위원장을 지낸 곽승준 고려대 교수는 “미국은 프리스쿨이 있어 우리보다 1년 반 먼저 입학한다”면서 “50년 전에 비해 아이들의 발육이 엄청 좋아졌고, 학교는 안전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는 “지자체의 무상보육 예산 절감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이익”이라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매우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원론적 측면에서 가능한 제안이지만 여러 연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 “아직 구체적 절차를 논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권기석 전수민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