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공정거래위원회는 ‘클린마켓 프로젝트(포괄적 시장개선대책)’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당시 공정위는 의료, 제약, 정보통신 등 소비자 불만이 높은 6개 업종을 자체적으로 선정해 이 업종에 포함된 회사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조사를 벌였다. 불공정 혐의가 포착되지 않았어도 ‘털면 나온다’는 식으로 담합, 시장지위남용 등 모든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
그로부터 15년여가 지난 21일 공정위는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에서 탈피해 기업 친화적 조사 절차 내용을 담은 ‘사건처리 3.0 개혁방안’을 내놨다. 피조사업체의 조사거부권 보장, 조사공문에 조사대상 특정 등 과잉 조사를 최소화해 기업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위압적 조사태도 등 추상적인 기준으로 조사관에게 징계를 부과하는 등 몇몇 방안은 정상적인 조사마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공정위가 셀프 개혁을 들고 나온 것은 올해 들어 경제검찰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굴욕적인 몇몇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2월 SK, 현대오일뱅크 등에 부과했던 담합 과징금 2548억원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6월에는 포스코ICT사에 과징금 71억원에 대한 통보서를 실무 직원 실수로 법정 기한보다 하루 늦게 보내 과징금을 받지 못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기업들은 법원에서 공정위 패소율이 높아지는 것을 근거로 공정위가 과잉 조사와 처벌을 하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여기에 검찰은 공정위의 고유 업무였던 담합 사건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공정위가 내놓은 것이 이번 개혁방안인 셈이다. 공정위는 우선 불합리한 현장조사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피조사업체의 권익보장, 조사공무원 준수사항 등을 담은 조사절차규칙을 제정해 외부에 공개키로 했다. 지금까지는 현장조사 공문에 ‘○○ 전자의 공정거래법 제○조 위반 여부’로 추상적으로 기재돼 필요 이상의 과잉조사가 이뤄질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조사목적과 대상을 특정해야 한다. 심지어 조사관은 조사 시작과 종료시각, 특이사항 등을 기재한 현장조사 과정 확인서를 작성해 피조사업체로부터 확인을 받아야 한다. 또 사건처리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원칙적으로 조사 개시 후 6개월 이내에 사건 조사를 마무리하도록 했다. 법원 패소의 주 원인이 되고 있는 리니언시(담합 자진신고제) 기업의 법정 진술 번복 사태를 막기 위해 담합에 가담했다고 자백한 임직원은 공정위 심판정에 출석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위 내부에서는 기업 조사방해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과잉조사만을 문제 삼는 것은 조사 의지를 꺾는 조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조사 종료 후 담당과장이 피조사업체에 애로사항을 묻는 ‘해피콜’을 의무화한 것 역시 과도하다는 의견이다. 공정위 한 직원은 “말로만 경제 민주화를 한다면서 인력은 늘리지 않고 조사 관련 서류작업은 배 이상 늘었다”고 하소연했다.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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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조사 최소화… 기업 부담 줄이겠다는 ‘셀프 개혁’ 방안] 공정위, 정상적 조사마저 위축 우려
입력 2015-10-21 19:47 수정 2015-10-21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