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양성우 속박했던 국가모독죄 위헌… 헌재, 폐지 27년 만에 결정

입력 2015-10-21 22:29
유신정권 비판 등 정치적 표현을 억압하는 데 주로 이용됐던 옛 ‘국가모독죄’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해당 조항을 폐지한 지 27년 만에 나온 위헌 선언이다.

헌재는 21일 옛 형법 104조 2항(국가모독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내국인이 해외에서 국가나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7년 이하 징역·금고에 처하도록 했었다. 위헌 결정에 따라 국가모독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사람들은 법원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게 됐다.

‘겨울공화국’이라는 시로 유명한 양성우 시인은 1977년 군사정권의 인권 탄압을 비판한 ‘노예수첩’이라는 시를 일본잡지 ‘세카이’에 발표했다가 국가모독죄와 긴급조치9호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양씨는 79년 건강악화로 가석방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국가모독죄는 88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고 폐지됐다. 양씨는 2012년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형사처벌을 통해 획일적으로 표현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의 안전·이익이나 위신을 지키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국가의 ‘위신’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비판을 처벌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대한민국의 ‘이익’ ‘위신’이라는 가치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고 봤다. 국가보안법이나 군사기밀보호법 등에서 국가 안전과 독립을 지키기 위한 상세 규정들을 두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조항이 필요치도 않다고 덧붙였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