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어떤 마을에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를 벌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색 옷은 그 사람이 높은 신분임을, 고운 베옷은 당시 금보다 2배나 비쌌기 때문에 그가 부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부자는 세상에 아쉬울 것이 없으며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이들 중에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된 사람입니다. 나사로의 뜻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사람’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집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삶을 연명하고자 하지만 이마저 쉽지 않습니다. 인간으로 가장 비참한 상황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둘에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죽음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장례를 치러줄 이는 없었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도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천사들에 이끌려서 아브라함의 품 곧 천국에 안겼습니다.
부자는 화려한 무덤에 묻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죽어서 지옥에 갑니다.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며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소리 질러 도움을 요청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해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덩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건너갈 수도 없고 거기에서 건너올 수도 없단다.”
여기에서 ‘가로놓여 있다’라는 말은 ‘고정되어 있다’라는 말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큰 구렁텅이를 놓았을까요. 바로 부자 자신입니다. 부자의 잘못은 분명합니다. 자신의 대문 앞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헤아리지 않았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사로를 통해 부자에게 끊임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돈에 쏠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 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것이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경제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사치로 눈이 먼 부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큰 웅덩이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돈에 눈먼 세상은 하나님과의 거리가 너무나 먼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버림받은 존재인 나사로를 기억하십니다.
안해용 목사(서울 더불어한교회)
[오늘의 설교] 가로놓여 있어서
입력 2015-10-21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