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훈련기 T-50은 우리 방산업계의 대표상품이다. 하지만 20년 전 개발될 때는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자주국방과 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고등훈련기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1980년대에 제기됐지만, 개발 가능성을 가늠하는 탐색개발은 1995년 끝났다. 하지만 생산을 위한 체계개발로 이어지지 않았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야 하고 우리 기술로 가능하겠냐는 회의론이 강해서다. 당시 논란은 한국형전투기(KF-X·보라매) 사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 상황보다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항공기 생산경험이 없는 나라가 첨단 훈련기를 만들겠다고 하니 황당했을 수 있다. 군은 초등훈련기 KT-1을 개발했고, 전투기 F-5 성능개량작업도 해봤다. 영국에서 훈련기를 도입할 때 고등훈련기 설계기술 일부를 얻어오고, 미 전투기 F-16을 사올 때도 훈련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받아오는 데 주력했다.
T-50은 전 세계 10여곳만 가진 최첨단 기술이 있어야 개발 가능한 초음속 훈련기다. “우리 기술로 절대 안 된다” “혈세 낭비다”는 식의 반대 목소리가 드셌고 1997년 7월에야 개발이 시작됐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의 기술지원을 받아 개발비 2조원 이상 들어간 당시 국내 최대 연구개발 사업을 성공시켰다.
T-50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생산은 해냈지만 핵심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어서다. T-50을 수출할 때마다 미국 승인을 받아야 하고 기술료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기술이 발전한 것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산업연구원은 T-50 사업 분석 보고서에서 “선진국 대비 30년 이상이었던 기술격차를 15년 내외로 단축시킨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평가했다.
T-50 개발과정을 되돌아본 건 KF-X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20년 전을 연상시켜서다. 전면 재검토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훈련기와 전투기는 생산방식과 기술수준 차이가 크다. 야심 차게 국산 전투기 개발에 나선 일본이나 이스라엘, 인도, 대만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스웨덴이 독자 전투기 ‘그리펜’을 생산했지만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도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 13년간 전문가 검토와 100여 차례 토론회, 간담회를 통해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검토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국내 기술로 개발하되 핵심기술은 해외에서 이전받기로 한 것이다.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은 외부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독자개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T-50 개발 당시와 비교하면 우리 기술 수준이 달라졌다. 당시 초등학생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대학생 수준은 됐다고 본다. 공군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T-50을 개조한 경공격기 FA-50은 부품조달과 성능개량에서 도입 전투기보다 유리한 점이 적지 않았다.
기술 수준도 제대로 모르고 국산화를 고집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안전한 길만 찾다가는 기술종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KF-X 사업은 일단 추진돼야 한다. 단 성공할 수 있는 장치가 준비돼야 한다. 사업단은 보강돼야 하고 단계별로 검증하고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감시기구도 필요하다. 우리가 개발하려는 전투기는 최첨단 F-35급 전투기가 아니다. 과도한 욕심으로 국민의 기대수준만 높여 놓았다가 결함이 발생한 K-계열 무기들의 실패사례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반대의견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기술 수준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이다. 정부는 솔직하게 현 상황을 공개하고 국민의 성원을 얻을 필요가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내일을 열며-최현수] KF-X사업, 제대로 해야
입력 2015-10-21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