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왜 이렇게 됐어” 얼굴 어루만지며 눈물바다… 격정의 상봉장

입력 2015-10-20 22:48 수정 2015-10-21 00:52

“그렇게 예쁘던 우리 오빠가 왜 이렇게 됐어….”

머리가 하얗게 센 김철식(81) 할머니는 회색 양복에 검은색 중절모를 쓴 김한식(86) 할아버지가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1층 대연회장에 들어오자 풀썩 주저앉았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 학도병으로 끌려가 소식이 끊긴 오빠였다. 김 할머니는 65년 만에 만난 오빠의 얼굴과 어깨,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오빠 사랑도 못 받고 살았어”라며 목 놓아 울었다. “얘가 복녀고, 얘가 복순이야. 희자는 죽었어”라고 같이 온 여동생들도 소개했다. 김 할아버지는 어느새 할머니가 된 여동생들을 껴안고 말없이 흐느꼈다.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의 첫 일정인 단체상봉이 시작되자 장내는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오후 3시30분 ‘반갑습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북측 가족들이 입장하자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남측 가족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곳곳에서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름표와 얼굴을 확인하고는 서로 부둥켜안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인 얼굴을 어루만졌다. 한동안 눈물만 흘리던 이들은 이내 다른 가족들의 건강과 안부를 묻고 옛 사진을 보면서 함께 기억을 더듬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어깨를 주물러주는 등 한결 편해진 모습이었다. 강산이 여섯 번도 더 변했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혈육의 정은 끈끈했다.

북측 상봉단의 고령자 채훈식·이흥종·정규현 할아버지(이상 88세)와 남측 상봉단의 고령자 김남규(96) 할아버지, 권오희(97) 할머니도 가족을 만나 한을 풀었다. 지병이 악화돼 구급차로 상봉길에 올랐던 김순탁(77)·염진례(83) 할머니도 무사히 오빠와 재회했다. 북한 최고 수학자였던 고(故) 조주경(1931∼2002년)씨의 아내 임이규(85)씨가 남한에 사는 동생 임학규(80), 조카 임현근(77), 시동생 조주찬(83)씨를 만나 눈길을 끌었다. 북측 상봉자들의 옷차림은 대개 비슷했다. 여성은 남청색 또는 짙은 자주색 치마에 꽃무늬 저고리를 입고 체크무늬가 들어간 녹색 겉옷을 걸쳤다. 남성은 회색 양복에 검은색 중절모를 썼다. 이들은 ‘초코파이’나 ‘후레쉬베리’ 같은 과자를 맛있게 먹었다.

한국적십자사 관계자는 상봉이 진행 중이던 대연회장에 참새가 날아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좋은 징조 아니겠느냐”고 했다.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북측의 한 기자는 남측 기자에게 “최근 신문을 보니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얘기가 많이 나오던데, 그게 뭡니까?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왜 반대합니까”라고 관심을 보였다. 면회소 곳곳에 대기하던 북측 안내원들은 먼저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거는 등 스스럼없이 행동했다.

단체상봉이 오후 5시30분에 마무리된 뒤 오후 7시30분부터는 비공개 환영 만찬이 열렸다.

권지혜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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