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한국사 검정 교과서들이 동학운동부터 이명박정부까지 근·현대사의 중요한 대목마다 ‘좌편향’ 사관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당 의원들에게 제공한 ‘고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 자료에 이런 평가의 근거를 제시했다.
교육부는 항일투쟁 부분에서 김일성이 주도했다고 알려진 ‘보천보 전투’가 유독 강조된 점을 불만스러워했다. 또 제주 4·3사건 등 광복 후 남한 단일 정부 수립에 반대한 무장투쟁을 공산주의 세력이 주도했음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학계 자문을 받아가며 교과서 내용을 되짚어본 결과, 보천보 전투는 항일투쟁의 대표 사례 중 하나여서 비중을 둬야 할 대목이었다. 다만 김일성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만큼 신중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또 4·3사건 기술에 대한 평가는 우익의 시각을 대변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공산주의 세력을 강조하다보면 민간인 학살이란 만행이 ‘불가피했다’는 투로 읽힐 위험성도 있다.
‘보천보 전투’는 금기(禁忌)?
이번 교과서 논쟁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사건이 보천보 전투다. 1937년 6월 4일 동북항일연군 제1군 제6사가 조국광복회 조직원들과 함경남도 보천보에 침투해 경찰주재소 등을 습격한 사건이다. 북한은 이를 김일성 우상화 재료로 활용한다.
현행 교과서들은 보천보 전투를 비중 있게 다뤘다. 금성·동아출판·미래엔·천재교육 등이 신문기사와 사진자료로 자세히 소개했다. 공통적으로 1937년 6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했다. 유일하게 김일성을 직접 언급한 동아출판은 “이 작전을 성공시킨 김일성 이름도 국내에 알려지게 됐다” “북한은 이 사건을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하였다”고 썼다.
교육부는 당시 일본 군·경에 입힌 피해가 미미했는데 교과서들이 과장했다고 평가한다. 김일성의 항일운동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무비판적으로 기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의 생각은 좀 다르다. 1930년대 항일무장투쟁 세력은 한반도에서 밀려나 주로 만주, 연해주를 본거지로 활동했기에 국내 투쟁으로는 보천보 전투가 특징적이라고 본다. 특히 동아출판은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되고 있음을 밝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4·3사건, 10·19사건…‘비극’만 부각?
교육부는 1948년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발해 벌어진 무장투쟁을 다룬 부분에도 칼을 댔다. 특히 제주 4·3사건의 실체를 명확히 기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에 반대하는 남로당 등 공산주의 계열에 의한 ‘총력적 무장투쟁’이라는 게 교육부의 정의다. “4·3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진압 과정의 강압·과잉 행위는 별개”라고 했다.
학살은 이승만정부가 저질렀지만 배경에 공산주의 세력의 ‘준동’이 있었다는 점을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과잉진압으로 민간인이 희생된 건 안타깝지만 공산주의가 배후였기에 불가피했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명분에 무게를 두라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천재교육이 ‘무장 봉기 세력과 미 군정이 동원한 경찰, 군대의 충돌’, ‘무장 봉기 세력과 토벌대 간 무력충돌’ 등으로만 표기해 봉기 주체를 누락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교과서들은 봉기의 주체를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좌익, 공산주의자 등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지적과 달리 천재교육 교과서 309쪽 해당 문장 바로 앞에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남한만의 단독 선거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고 적혀 있다.
여수·순천 10·19사건의 경우 민간인 피해 부분이 문제가 됐다. 금성교과서, 리베르스쿨, 비상교육, 지학사, 천재교육 5종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민간인 희생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3종은 ‘수많은 인명 피해(교학사)’, ‘전투원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 희생(동아)’, ‘대규모 민간인 학살(미래엔)’등으로 표기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호의적”
교육부는 ‘전두환∼이명박정부’를 다룬 부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좌편향’이라고 규정하진 않았다. 서술 관점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기계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쳤다. 진보성향 정부에 조금 호의적이었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정도다.
전수민 이도경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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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20 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