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83세 北 아버지, 65세 아들에 “닮았지, 닮았지”

입력 2015-10-20 21:56 수정 2015-10-21 01:45
남측의 딸 이정숙씨(68)가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인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측의 아버지 이흥종씨(88)를 만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0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선 60년 넘게 얼굴도 모른 채 살아왔던 부자, 부녀가 극적으로 상봉했다. 돌쟁이가 환갑을 넘긴 노인이 됐어도 부모 앞에선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세 살 때 소식이 끊겨버린 이흥종(88) 할아버지를 만난 남측의 이정숙(68)씨는 단숨에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아버지, 나 정숙이. 아버지 딸 어떻게 생겼어? 딸 보니까 좋아요? 할아버지 사진을 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었는데 할아버지랑 아버지 얼굴이 똑같아….” 이 말에 아버지 눈가가 붉어지고 입가가 떨렸다. 70세를 바라보는 딸은 주름진 아버지 얼굴을 만지고 또 만졌다. 이 할아버지는 “미안해서, 미안해서”라는 말만 반복했다. 단체상봉 시간이 끝나고 북측 가족은 퇴장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와도 부녀는 좀처럼 떨어지지 못했다. 정숙씨는 아버지 귀에 대고 “아버지, 두 시간 있다가 또 봐요. 만찬 하니까 저녁 먹을 때 봐요”라고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탄 휠체어를 밀어 버스 타는 곳까지 함께 갔다. 정숙씨는 “얼굴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그래도 보니까 알겠어. 그게 핏줄인가봐. 우리 집안 골격이 있어”라고 감격스러워했다. 뱃속에 있던 아들 장균(65)씨를 처음 본 오인세(83) 할아버지는 얼굴을 맞대고 손을 나란히 하면서 “닮았지, 닮았지”를 연발했다. 장균씨는 “65년을 떨어져 있었어도 낯설지 않다”고 했다.

북에선 온 손권근(83)씨는 아들 종훈(66)씨 명찰에 쓰인 이름을 확인하고 한동안 눈을 바라보다 이내 꽉 껴안았다. 아버지는 환갑이 넘은 아들의 어깨를 연신 두드리며 눈물을 훔쳤다. 종훈씨는 “태어나서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아봐”라며 지나간 세월을 원망했다. 여동생 권분(78)씨는 60여년 만에 만나는 오빠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내 생전에 오빠 얼굴 못 보는지 알았지”라고 흐느꼈다.

이옥연(88) 할머니는 전쟁통에 헤어진 동갑내기 남편 채훈식 할아버지를 만났다. 1950년 8월 경북 안동훈련소에서 돌아온 남편이 “잠깐 다녀올게”하고 나간 게 마지막이었다. 면회소 1층 대연회장에 들어서는 남편 모습을 본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헤어졌을 당시 돌쟁이였던 아들 희양(66)씨는 “아버지, 제가 아들입니다”라고 오열했다. 65년 만에 마주한 부자는 서로 부둥켜안고 중절모가 벗겨질 정도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마음을 추스른 채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아내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이제 늙었는데 손잡으면 뭐 해.” 아내의 투정엔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회한이 묻어있었다. 이 할머니는 가끔 손주들을 앉혀 놓고 “할아버지가 방 안에 있으면 빛이 났다”고 그리워했다. 미수(米壽)의 할아버지는 “너희 어머니가 나 없이 혼자 가정을 책임지고 나를 위해 (너희 어머니는) 일생을 다 바쳤다. 나는 10년을 혼자 있다가 통일이 언제 될지 몰라서…”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권지혜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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