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수조원대 사기범 조희팔(생존 시 58세)의 중국 밀항을 돕는 등 조씨의 생사 여부를 규명할 핵심 인물인 조씨 조카 유모(46)씨가 20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38분쯤 대구 동구 효목동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책상 의자에 앉아 있는 유씨를 지인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유씨에게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유씨 극단적 선택 왜? 수사 영향은=경찰조사 결과 사건 현장에서는 항우울증 겸 수면제인 ‘미르타자핀’ 약 봉투가 뜯겨진 채 발견됐다. 유씨는 지난 16일 이 약 42알을 처방받았으며, 발견 당시 29알이 없어진 상태였다. 유씨는 1∼2년 전부터 불면증을 앓아 왔으며 최근 이 약을 처방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유씨가 수면제를 먹고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타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밝혔다. 유씨가 유서를 남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유씨의 정확한 사망원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며, 유씨의 사무실 컴퓨터와 휴대전화 통화·문자 내역 등도 확인해볼 계획이다.
경찰은 조씨 생존을 전제로 재수사가 시작되고, 자신의 녹취록까지 공개되자 유씨가 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씨는 조씨의 최측근인 강태용(54)씨 검거 후 검·경의 직접 조사를 받지는 않았지만 조씨의 친척이자 핵심 조력자로서 다시 수사 대상에 오르는 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얘기다.
검찰 관계자는 “조희팔과 가깝고 밀항을 도와준 사람이어서 조사 대상이었지만 지난해 7월 시작된 재수사나 강태용 검거 후에 소환하거나 직접 조사하지는 않았다”며 “유씨가 자신이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짐작은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유씨가 조희팔 일단의 다단계 사기에서는 별다른 역할이 없었던 것으로 본다”며 “유씨 죽음이 수사에 미칠 영향은 별로 크지 않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유씨가 오랫동안 조씨의 집사 역할을 한 핵심 인물이어서 그의 사망으로 최소한 조씨 사망설의 진위 규명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씨는 누구인가?=유씨는 외삼촌인 조씨가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유씨는 2008년 10월 사기 혐의 등으로 수배 중이던 조씨를 위해 주변 인물들과 밀항을 공모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족을 통해 중국 어선(30t급)을 구했다.
이후 여러 차례 시도 끝에 2008년 12월 10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격렬비열도 서쪽 약 60마일 떨어진 공해상에서 조씨를 배에 태워 중국으로 밀항시켰다.
그는 중국 내에서도 조씨의 도피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조씨 밀항을 도운 혐의 등으로 2010년 초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 후 2011년 초 출소했다. 출소 후에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조씨와 함께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씨는 조씨를 헌신적으로 도왔음에도 최근까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는 사업을 위해 대구 동구에 사무실을 임차했지만 6개월째 임대료도 내지 못했고, 자주 술에 취해 있었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특히 지난 10일 강씨가 중국에서 검거된 뒤 주위에 “많이 힘들다”고 토로하는 등 심적인 부담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유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씨가 2011년 12월 중국에서 숨졌고 유골을 자신이 가지고 국내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또 조씨가 생존 당시 중국에서 6개월마다 집을 옮겨 다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강씨가 검거된 후에도 계속 조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조씨가 살아 있는 듯한 투로 통화한 유씨의 통화 녹취록이 공개돼 조씨 생존설이 다시 부각됐다.
조희팔은 2004∼2008년 의료기기 대여업 등으로 고수익을 낸다며 4만∼5만명의 투자자를 끌어 모아 4조원가량을 가로챈 뒤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했다. 2011년 12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생사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구=최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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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무실서 발견… 경찰, 수면제 복용 자살 추정] 조희팔 中 밀항 주도한 외조카 ‘의문의 죽음’
입력 2015-10-20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