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北 삼촌 김일성 훈장 내놓고 南 조카는 덮고… 60여년 만에 해후

입력 2015-10-20 22:45
남측의 아내 이옥연씨(87)가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측의 남편 채훈식씨(88·오른쪽)를 만나 65년간 나누지 못한 얘기를 하고 있다. 아들 희양씨(왼쪽)가 아버지가 북한에서 받은 표창장을 살펴보는 동안 채씨가 흐느끼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0일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는 60여년 만의 해후로 들뜬 분위기였지만 종종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주로 북측 가족들이 당에서 받은 훈장과 표창장을 꺼내들었을 때였다. 이럴 때마다 북측 기자들이 앞 다퉈 모여 취재에 나선 반면 남측 가족은 어색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경우가 잦았다.

북에서 온 채훈식(88)씨의 며느리 강미영(45)씨는 시아버지가 받은 ‘김일성 표창장’을 꺼내 보였다. 채씨가 아들 희양(66)씨를 부둥켜안고 말을 잇지 못한 채 울기만 하자, 안타까운 마음에 ‘시아버지가 북에서 잘 살아왔다’는 의미로 꺼낸 것이다. 1956년 1월 1일에 수여된 표창장에는 “계획과제를 성과적으로 수행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강씨는 그 외에도 각종 훈장과 표창장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일순간 북측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강씨는 남측 기자가 다가오자 옆으로 밀쳐내기도 했다. 남측 가족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이를 바라봤다.

북측의 홍대균(83)씨를 만나러 온 남측의 누나 복자(89)씨와 여동생 정자(80)씨 앞에도 김일성·김정일 그림이 그려진 노동대회 참가장과 인민군 훈장이 놓였다. 홍씨의 아들 길연(43)씨가 북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남매가 오열하는 동안, 북측 가족과 남측 가족들 사이엔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홍씨의 남측 조카 우찬표(37)씨가 노동대회 참가장을 슬며시 덮어 안 보이게 하자 길연(43)씨가 금세 참가장을 앞으로 돌려놨다. 이어 홍씨가 받은 인민군 훈장을 설명하며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명의로 된 태양절 기념 선물명세서를 보여주자, 주변에 있던 북한 안내원들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기도 했다. 반면 이를 취재하려는 남측 취재진에겐 민감하게 반응해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남측의 여동생 남상순(72)씨와 재회한 북측의 철순(85)씨는 건강을 묻는 질문에 “나 건강해. 아주 좋아. 당에서 다 해줘서 딴 거 없어”라고 답하기도 했다.

상봉장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사진도 수시로 등장했다. 북측의 오빠 권영구(85)씨를 만난 남측 여동생 영숙(76)씨가 “오빠가 그래도 이북에서 잘 산다고 하더라”며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이에 권씨 딸 경희(47)씨가 봉투에서 ‘로병(노병)대회 참석 증명서’를 꺼냈다. 올해 7월 발급된 증명서 왼쪽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동그랗게 찍혀 있었고, 오른쪽에는 “제4차 전국로병대회 참가자임”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고승혁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marquez@kmib.co.kr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