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공개로 본 北 실상] 해외 주재관 대거 이탈… 장마당도 활성화

입력 2015-10-20 22:47 수정 2015-10-21 00:43
북한의 탈(脫)사회주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엘리트급을 포함한 외국 주재관들이 대거 이탈했고, 장마당(암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자본주의도 암암리에 뿌리 내리고 있다. “북한에는 당이 2개 있는데 ‘장마당’은 이익이 되는데 ‘노동당’은 이익이 안 된다”는 유행어가 북한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20일 국가정보원 국정감사를 마친 새누리당 이철우,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간사가 전달한 내용은 북한 체제의 불안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선 체제 유지의 근간이자 자금줄인 외국 주재관들의 이탈이 급증하고 있다. 북한의 해외 주재관은 2013년 8명, 2014년 18명에 이어 올해는 이달까지 20명이 남한에 귀순했다. 이 중에는 엘리트 계층도 포함돼 있으며 주로 대북방송을 듣고 귀순을 결심했다고 두 의원은 전했다. 그동안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이나 전단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이 의원은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한 엘리트도 한국에 와 있다”고 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애민주의’를 표방하며 대대적으로 준비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도 오히려 주민 불만만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사회엔 “중국에서 온 고위층은 환대하면서 인민들에게는 전기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먹고살기에도 바쁜데 행사에 동원돼 더 힘들다”는 불평이 퍼진다는 것이다. 또 모든 주민에게 월 생활비의 100% 특별상금을 지급했지만 오히려 “달러로 환산하면 50센트에 불과하다. 쌀 1㎏도 못 사는 돈을 주고 감상문을 쓰라 하고, 충성결의모임에 동원한다”는 냉소적 반응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달러나 쌀값과의 비교는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습득된 걸로 보인다. 실제 북한에는 380여개의 장마당이 운영 중이다. 공식적으로 달러당 북한 돈은 106원인데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7950원으로 무려 79배가 높은 환율이 형성돼 있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달러가 ‘기축 통화’로 이용되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다.

외국에 근로자로 나갔다가 북한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자본주의를 전파하고 있다. 북한의 재외 근로자는 현재 5만8000여명, 누적으로는 22만명에 달한다. 휴대전화 이용자도 37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카카오톡 도·감청’을 우려해 한국산 휴대전화는 쓰지 말도록 교육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 더 이상 통제되기 어려운 시대로 간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두 의원은 설명했다. 충성심 대상이 당에서 돈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과 권력층 간의 ‘공동체 의식’도 희미해지고 있다. 이 의원은 “김일성 시대를 100이라고 하면 김정일 시대는 50∼70, 김정은 시대는 10 정도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강력한 사회 통제와 중국의 지원 덕분이라는 관측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