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에서 금강산까지. 군사분계선이 없으면 차로 한 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20일 60여년 만에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이산가족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먼 곳처럼 느껴졌다.
남측 상봉단 96가족 389명과 수행단, 기자단 등은 오전 8시37분 버스 33대에 나눠 타고 강원도 속초에서 출발했다. 상봉단이 하룻밤을 묵은 한화리조트 숙소엔 동이 트기 전부터 불이 켜졌다. 한화리조트에서 임시 환전소를 운영한 우리은행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환전하러 오는 분 대부분이 2∼3일 전부터 잠을 못 잤다고 했다”며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면 많이 우실 것 같아 손수건을 선물로 드렸더니 좋아하셨다”고 했다. 염진례(83) 할머니는 허리디스크로, 김순탁(77) 할머니는 천식이 악화돼 산소마스크를 쓰고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상봉단은 남측 출입사무소(CIQ)에서 통관 수속을 밟은 뒤 7번 국도를 따라 휴전선과 군사분계선을 차례로 지났다. 창밖으로 구선봉(낙타봉)이 보이자 현대아산 직원이 “9명의 신선이 바위산 위에서 바둑을 두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오전 11시16분 상봉단은 천막과 컨테이너 가건물로 만들어진 북측 CIQ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일정이 지연됐다. 과거와 달리 북측 직원이 상봉단이 소지한 태블릿PC와 기자단의 노트북을 일일이 조사했기 때문이다. 기자단의 항의에 북측 직원이 “법과 원칙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발끈해 분위기가 급랭했다.
상봉 지연을 우려해 기자단을 제외한 상봉단이 먼저 금강산으로 출발해 오후 1시25분 온정각 서관에 도착했다. 조마조마했던 방북길이 비로소 끝나는 순간이었다.
권지혜 기자, 속초·금강산=공동취재단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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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0-20 2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