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5년 만에 불러보는 “여보”… 남북 이산가족 감격의 상봉

입력 2015-10-20 22:42 수정 2015-10-21 00:29
결혼 6개월 만에 헤어진 부부가 65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났다. 남측 부인 이순규 할머니가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첫날인 2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측 남편 오인세씨를 만나자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손으로 미소를 가리고 있다. 연합뉴스

결혼 반년 만에 “열흘 뒤에 보자”며 전쟁터로 나간 남편은 65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홀몸으로 전국을 돌며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다. ‘근본 없는 자식’ 소리 들을까 엄하게 아들을 대했다. 보고 싶은 마음은 속으로만 삼켰다. 밖으로 뱉어봤자 돌아오는 건 동정일 뿐 남편은 아니었다.

죽었거니 생각하며 아들만 보고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꿈에 나와 “배가 고프네. 밥 좀 줘”라고 한 날을 기일로 정했다. 그가 직접 만든 장기알, 결혼식에서 신었던 구두를 ‘아버지 유품’이라고 아들에게 가르쳤다. 헤어질 당시 뱃속에 있던 아들은 어느새 환갑을 넘겨 초로(初老)에 접어들었다. 돌아보면 온통 원망과 그리움의 나날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전화가 온 건 이달 초였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북한에서 남편이 누나와 자신을 찾는다고 했다. ‘살아 있었구나.’ 여든이 넘은 아내의 가슴이 소녀처럼 뛰었다. 생전 아버지를 부르지 못했던 아들은 며칠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순규(85) 할머니는 20일 금강산에서 6·25전쟁 직후 헤어진 남편 오인세(83)씨와 마침내 해후했다. “보고 싶은 거 얘기하면 한도 끝도 없지. 평생을 떨어져 살았는데 어떻게 사흘 만에 다 얘기를 해.” 눈물 고인 부인의 타박에 남편 말이 길어졌다. “전쟁 때문에 그래 할매. 나는 말이야 정말 고생길이, 고생을 너무 하고….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65년 만에 마주 본 부부는 부둥켜안은 채 험난했던 지난 세월을 눈물로 씻어냈다.

남편은 옆에 있던 아들 오장균(65)씨도 부여안고 번쩍 들어올렸다. 아들은 “아버지 자식으로 당당히 살려고 노력했어요”라며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생애 처음 만나는 아버지였다. 이 할머니는 준비해 간 선물을 꺼냈다.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새긴 손목시계였다. 충북 청원의 시골이어서 결혼식 때 사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평생 해로(偕老)의 소원을 담았다. 아직 집에 남아 있는 결혼식 구두 대신 새로 산 구두도 건넸다. 결혼식장에서 웃으며 서 있던 젊을 적 남편을 그리며 샀다. 이 할머니는 “살아있는 것만도 고마워”라며 선물을 건넸다. 오씨는 북한에서 결혼해 자녀 다섯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602일 만에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 현장은 곳곳에서 통곡이 터졌다. 남측 상봉단 389명과 북측 141명 등 모두 530명이 참가했다. 북측 가족들이 상봉장에 들어서자 기적처럼 알아본 남측 가족들은 차례로 달려 나갔다. 기쁨 때문인지, 슬픔 때문이지 모를 눈물이 서로의 옷깃을 적셨다.

강준구 기자, 금강산=공동취재단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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