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관광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진수(가명·23)씨는 지난해 여름 한 리조트에서 매일 9시간씩 근무했다. 전공 특성상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현장실습의 일환이었다. 극성수기였던 탓에 일은 넘쳐났지만 김씨가 받은 수당은 2만원도 되지 않았다.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고용계약도 맺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이 리조트는 고용노동부의 현장점검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적발돼 처벌을 받았다.
김씨가 일한 리조트가 노동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것은 김씨를 ‘근로자’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씨처럼 현장조사를 통해 실제 일을 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한 실습생은 대학교육 과정상 실습을 나온 ‘학생’으로만 치부된다. 일을 했더라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이나 최대 근로시간, 직장 내 성희롱, 산업재해 보험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최근 늘어나는 직업체험형 인턴 등 대학생 인턴들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청년 인턴·직업체험 확대 정책을 펼치는 정부가 학생의 근로자 인정 기준 등을 명확히 하지 못하는 사이 청년의 ‘열정 페이’가 계속되는 것이다.
20일 고용부에 따르면 마이스터고와 같은 실업계 특성화고교의 현장 실습생은 법적으로 근로자의 특성이 인정된다. 과거 실습 현장에서 고교 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고 등을 계기로 산업재해 등 보호를 위한 특례조항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현장실습생의 현실은 다르다. 간호, 호텔경영, 유아교육, 사회복지학과 등 전문기술이 필요한 전공과목에서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현장실습은 여전히 ‘고등교육법상 교육과정’으로만 분류돼 있다. 학생이라는 것을 전제로 무분별한 근로를 하지 못하게 하고 교육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취지의 교육부 지침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실습 현장에서 사실상의 노동착취가 이뤄지더라도 고용부에 적발되지 않는 한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
최근 청년의 취업 기회를 넓히자는 취지 하에 확대되는 대학생 인턴사업은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이 민간기업과 제휴해 진행하는 대부분의 ‘직업 체험형 인턴’은 원칙적으로 무급이다. 학교가 교통비 등의 실비나 장학금을 주거나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식이다.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취업연계형 인턴도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가 불명확해 기업 사정에 따라 근로조건이 천차만별이다.
고용부도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대학 관리를 맡고 있는 교육부와의 이견으로 관련 제도 정비는 진척이 없다.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인턴 활용 기업에 대한 지원은 고용부가, 학생 연계는 대학(교육부)이 맡아 인턴제를 현실화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이 역시 좌절됐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태로는 상당수 대학 인턴이나 실습생들은 소송을 해보기 전까지는 (근로자로) 보호받을 수 없다. 산재보험이나 임금은 물론 과도한 야근, 성희롱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대학들은 보호 장치를 만들거나 학생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면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고 인턴사업 등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며 부담스러워해 (기준 마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노호창 박사는 “인턴이라는 별도의 법적 지위를 근로자와 근로자가 아닌 사람 중간에 마련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생각해봅시다] ‘교육’ 이름으로 강요 당하는 열정페이… 실습 대학생, 최저임금·산재 등 보호 안돼
입력 2015-10-20 2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