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욱조 (14) 요한복음 뽕짝으로 부르자 성도들 반응 폭발적

입력 2015-10-21 19:29
장욱조 목사(첫줄 가운 입은 사람)는 총회신학대학원을 마치고 2000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장 목사 왼쪽이 아내 서경숙, 오른쪽이 어머니 정연순이다.

나는 집회 중 조는 어르신들을 어떻게 집중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기도를 했다. 그 순간 응답이 왔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에 4:14). 하나님이 ‘내가 이때 쓰려고 널 대중가수 시킨 거다’라고 하셨다. 고민 끝에 즉석에서 그날 설교 본문인 요한복음(3:16∼17)을 트로트 선율로 만들어 불렀다. 전주가 시작되자 한분씩 눈을 떴다. 노래가 끝날 땐 앙코르가 나왔다. ‘뽕짝’ 찬양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선교 여행 중 노래를 만든 기억도 생생하다. 미국 애틀란타 훼이트빌침례교회(김상민목사) 부흥회에 초청받았을 때다. 그 교회 한 자매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이 됐다. 병원 의사는 의식 회복 가능성은 2%라고 했다. 김상민 담임목사와 나는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 이 자매를 회복시켜 주소서.’

나는 숙소로 돌아와 말씀을 읽고 기도를 했다. 그날 내가 읽은 본문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와 시편 121장 중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사 43:2)였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그 말씀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내가 주를 향하여’와 ‘우리가 고난의 바다를 지날 때’란 복음성가이다. 3일 동안 예배 때마다 온 성도들과 함께 찬양 하며 합심하여 기도 했다.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고자매는 집회가 끝난 후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나는 하나님이 간절한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늘 함께 하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든 복음 찬양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미국 캘리포니아 황영진 목사가 담임하는 스탁톤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 일이다. 부흥회 중 박길순이란 자매가 저녁식사에 나를 초대했다.

그가 식사 중 간증을 했다. “내가 자살을 할 마음을 먹은 뒤 친구에게 장례를 부탁했어요. 그 친구가 ‘죽으려거든 이 카셋트 테이프를 들은 후에 죽으라고 해서 듣다가 자살을 포기했어요. 그 테이프가 장욱조의 간증찬양이었어요.”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다윗이 수금을 타며 찬양할 때 악신이 떠나듯이 찬양은 놀라운 능력이 있다. 나는 막상 연예계를 떠났지만 먹고 살기가 쉽진 않았다. 90년대 초반 두 자녀가 대학 공부를 하고 미국 유학을 하던 때이다. 학비는 비싸고 고정된 수입은 없는 불안정한 시기였다. 한국저작권협회에 가입했지만 저작권료가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미국에서 찬양 집회를 하면 사례비를 고스란히 유학 중인 딸에게 쥐어주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간증이나 찬양 집회 사례비를 흥정하는 것은 매우 부끄럽게 느껴졌다. 찬송을 팔아먹고 다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사례비를 받았을 때다. 화장실에 가서 봉투를 열어봤다. 두근거렸다. 단돈 5000원이 들어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해가지고 먹고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어떤 땐 1만, 2만원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곤 했다.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기는 짐승을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말씀에 기댔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했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힘들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자문하곤 했다. 정리=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