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그때그때 다른 근로 기준] 대학 실습생은 근로자인가 학생인가

입력 2015-10-20 19:56
호텔관광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진수(가명·23)씨는 지난해 여름 한 리조트에서 매일 9시간씩 근무했다. 전공 특성상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현장실습의 일환이었다. 극성수기였던 탓에 일은 넘쳐났지만 김씨가 받은 수당은 2만원도 되지 않았다.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고용계약도 맺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이 리조트는 고용노동부의 현장점검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적발돼 처벌을 받았다.

김씨가 일한 리조트가 노동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은 것은 김씨를 ‘근로자’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씨처럼 현장조사를 통해 실제 일을 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대학 교육 과정상 실습을 나온 ‘학생’으로 치부된다. 최근 늘어나는 직업체험형 인턴 등 대학생 인턴들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일을 했더라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이나 최대 근로시간, 직장 내 성희롱, 산업재해 보험 등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정부가 청년고용 기회 확대를 이유로 인턴·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하면서도 근로자 인정 기준 등을 명확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일 고용부에 따르면 마이스터고와 같은 실업계 특성화고교의 현장 실습생은 법적으로 근로자의 특성이 인정된다. 과거 실습 현장에서 고교 실습생이 사망하는 사고 등을 계기로 산업재해 등 보호를 위한 특례조항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 현장실습생의 현실은 다르다. 간호, 호텔경영, 유아교육, 사회복지학과 등 전문기술이 필요한 전공과목에서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현장실습은 여전히 ‘고등교육법상 교육과정’으로만 분류돼 있다. 학생이라는 것을 전제로 무분별한 근로를 하지 못하게 하고 교육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취지의 교육부 지침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실습 현장에서 사실상의 노동착취가 이뤄지더라도 고용부에 적발되지 않는 한 위법 여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

최근 고용난에 시달리는 청년의 취업 기회를 넓히자며 확대되고 있는 대학생 인턴사업은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고용부가 주관하는 중소기업 청년인턴제처럼 취업을 목적으로 한 인턴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도록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대학이 민간기업과 제휴를 맺고 진행하는 대부분의 ‘직업 체험형 인턴’은 개념조차 정리돼 있지 않다. 교통비 등의 실비 지원도 못 받는 실정이다.

고용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대학 관리를 맡고 있는 교육부와의 이견으로 관련 제도 정비는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인턴 활용 기업에 대한 지원은 고용부가, 학생 연계는 대학(교육부)이 맡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부처 간 입장차로 좌절됐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태로는 상당수 대학 인턴이나 실습생들이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한다. 산재보험이나 임금도 문제지만 과도한 야근, 성희롱 등의 문제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대학들은 보호장치를 만들거나 학생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면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고 인턴사업 등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며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사각지대 해소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노호창 박사는 “인턴이라는 별도의 법적 지위를 근로자와 근로자가 아닌 사람 중간에 마련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