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주부 김모(65)씨는 1년 전부터 모르는 사람과 집을 나누고 있다. 결혼해 독립한 두 아들이 쓰던 방을 새로 단장해 게스트하우스를 꾸려간다. 한 달에 1주일에서 열흘 정도 손님이 찾아온다.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인 외국인들은 김씨에게 활력소다. 그는 “1박에 5만원 정도 받는 용돈벌이 수준이지만 내 집에서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라며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여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결심했을까. 김씨는 “강연 프로그램인 테드(TED)에서 에어비앤비 창설자 얘기를 들은 뒤 호기심이 생겨 도전했다”고 말했다. 약 7년간 프랑스 파리 등 유럽에서 생활한 경험도 뒷받침이 됐다. 집에 친구나 이웃을 초대해 일상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집을 ‘삶의 발판’ 정도로 여기는데, 집을 나눔으로써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노년에 내 집을 ‘똑똑하게’ 이용하는 실버세대도 차츰 늘고 있다.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퇴직금이나 연금, 임대수입 등으로 안정적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노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미래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100세 시대가 오면서 긴 노후를 보내야 하는데 국민연금으론 생계유지도 빠듯하다. 다른 소득이나 수입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집을 활용하는 데 주목한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이모(64)씨도 비슷한 경우다. 2011년부터 출가한 딸의 방을 게스트하우스로 쓰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하룻밤 묵을 개인 공간과 화장실, 아침식사 등을 제공한다. 우리 문화를 알려주고, 함께 유적지에 다니고, 전통음식도 해먹는다. 이씨는 “은퇴 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에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며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사니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집을 노후연금의 자산으로 활용하는 주택연금은 날이 갈수록 인기다. 주택금융공사가 내놓은 이 상품은 만 60세 이상 고령자가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면 매월 연금처럼 생활지원금을 준다.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하지 않고도 다달이 돈을 받을 수 있다. 부부가 모두 사망하면 주택을 처분해 정산한다. 그동안 받은 연금이 집값을 초과해도 상속인에게 청구하지 않고, 돈이 남으면 상속인에게 돌려준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정모(55·여)씨는 주택연금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 정씨는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위해 고려 중”이라며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자녀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데 다달이 돈이 들어온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단독주택으로 주택연금을 신청한 임모(62·여)씨는 “집을 처분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아 주택연금을 신청했다”며 “많은 금액을 받을 수는 없지만 생활자금이 생겨 만족한다”고 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올해 상반기 주택연금 가입건수가 3065건에 이르렀다고 20일 밝혔다. 2007년 상품이 출시된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2472명)보다 24% 증가했다. 주택연금의 누적 가입자 수(올 6월 기준)는 2만5699명이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한국의 노인과 집] 집을 똑똑하게 이용하는 실버세대들… 게스트하우스 꾸리고 주택연금 받고
입력 2015-10-20 2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