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인과 집] 집 크기·겉모습에만 치중… 주거의 질은 열악

입력 2015-10-20 22:38

김모(81·여)씨는 두 아들이 결혼해 독립한 뒤로 남편과 둘이 지냈다. 서울 변두리지만 30평대 아파트가 있고, 자식들이 간간이 보내주는 용돈과 기초연금 등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러다 2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 혼자 남게 됐다. 큰아들이 사업 실패를 겪고, 중소기업에 다니던 둘째 아들이 실직했다. 김씨에게도 태풍이 밀려왔다.

자식들에게서 용돈이 끊기자 당장 생활비가 막막했다. 20만원 기초연금 외에는 마땅한 수입이 없다. 집을 팔자니 달리 살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수입도 없이 전·월셋값 뛰는 걸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어서 자식들도 눈에 밟힌다. 김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렵사리 장만한 집이 애물단지가 된 느낌이다.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10년 뒤면 5명 중 1명이 노인인 세상이 된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26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은 20.83%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노인 부양은 더 이상 개인의 몫이 아니다. 벌써 수많은 노인이 김씨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는 ‘노인을 위한 주거정책’이 없다. 우리가 집의 크기와 겉모습에 집중하는 사이 ‘주거의 질’이란 알맹이는 형편없이 나빠졌고, 그 여파가 지금 노인들에게 밀어닥치고 있다.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문제가 됐다. 주거의 질적 악화는 경제적, 심리적 불안감을 동반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년의 삶을 위협한다.



주택정책, 물량보다 수요에 맞춰야

경제적 곤궁함, 외로움과 소외감을 겪는 노인은 혼자 살거나 부부끼리 사는 경우가 많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서 노인 단독 가구의 20% 이상이 경제적·심리적 불안감을 호소했다. 노인가구 가운데 독거노인은 23%, 노인부부 가구는 44%에 이른다.

정부도 노인가구의 경제적 위기를 주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강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내년부터 시세의 30% 수준에서 고령층 전세임대주택을 연간 2000가구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집이 있지만 크기를 줄이거나 팔고 싶은 노인가구, 집이 없어 싼 전셋집을 얻고 싶은 노인가구 등에 주거 안정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판적이다. 이렇게 ‘몇 천 가구 공급한다’는 식의 물량 확대 정책보다 다양해진 노년층 주거 수요에 맞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토연구원 천현숙 연구원은 “현재의 노인 주택정책은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구, 즉 노인부양 가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노인, 부부만 사는 노인 가구가 부쩍 늘고 있는데 이를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건축공간도시연구소 염철호 박사는 “공급 위주의 주택정책으로 접근하지 말고 주거문화의 측면에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주거의 질과 복지서비스의 연계

노인가구 ‘주거의 질’은 열악하다. 독거노인가구가 특히 심각하다. 국토부가 지난해 주거실태를 조사했더니 전체 독거노인가구의 96%가 저소득층(월평균 소득 199만원 이하)이었다. 독거노인가구의 15%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기도 했다. 노인이 가구주인 가구로 확대해도 저소득층 비중은 77%나 됐다.

독거노인가구의 12.9%는 주택법이 정한 최저 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1인 가구의 최저 주거기준은 주거면적 14㎡ 이상에 부엌을 갖춘 방이 하나 이상인 경우인데, 이보다 못한 곳에 산다는 뜻이다.

여기에다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져 집이 의미가 없어진다. 이 때문에 독거노인이나 노인부부 가구를 대상으로 한 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

국토부가 추진하는 공공실버주택은 ‘주거의 질’과 ‘복지서비스’를 한데 결합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토부는 정부 예산과 민간 사회공헌기금 등을 활용해 2017년까지 1300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공공실버주택의 복지시설에는 사회복지사나 간호사가 상주하며 의료·건강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노인들이 사는 주거시설에는 응급비상벨 등이 설치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연구원은 “정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 기업의 참여나 지역 시민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