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인’ 억새의 은빛 유혹=민둥산(1117m)은 명성산(경기도 포천), 오서산(충남 홍성), 천관산(전남 장흥), 영남알프스(울산 울주) 등과 함께 전국 5대 억새군락지로 꼽힌다. 봄 여름 겨울에는 등산객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가 가을 억새철만 되면 여행자들이 줄을 선다. 산 정수리를 뒤덮은 20만평의 하얀 꽃물결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기 때문이다.
민둥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쉽게 오르려면 증산초등학교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이 곳에서 1코스 ‘완만한 경사’ 길을 따라가면 울창한 나무 사이로 산허리를 휘감아 돈다. 초반은 약간 가파르지만 이내 유순한 길이 이어진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이 자란 낙엽송이 짙은 그늘로 따가운 가을햇살을 막아 줘 걷기에도 편하다. 산책하듯 걷다보면 어느새 광섬유 같은 억새꽃이 눈앞에 다가선다.
억새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등산로는 가르마처럼 산마루 너머 건너편 산으로 흘러간다. 정상에 서면 산은 구릉과 구릉으로 이어져 있다. 남쪽 방향 억새군락지 너머 함백산, 가리왕산, 백운산, 태백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억새는 단풍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을바람에 은박지처럼 반짝거린다. 늦은 오후에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강렬한 역광에 황금색으로 물들며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인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깔때기 모양으로 움푹 팬 거대한 웅덩이가 신비롭다. 혹성탈출에 나올법한 분화구 모양이 인상적이다. 돌리네(doline)로 불리는 이 웅덩이는 석회암이 빗물에 녹아 지반이 둥글게 내려앉은 싱크홀이다.
‘제20회 민둥산 억새꽃 축제’가 지난 10월 1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열리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증산초교에서 출발하는 90분 코스의 민둥산 등반대회가 열린다.
◇하늘 위의 산책=백운산(1426m) 능선을 따라 ‘하이원 하늘길’이 이어진다. 강원랜드가 만항재에서 함백역까지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고도(運炭高道)를 탐방로로 조성하고 하이원리조트 내부와 외부에 여러 코스의 탐방로를 냈다.
하늘길은 산책코스와 등산코스로 눠 10여개의 코스를 갖추고 있다. 짧게는 15분짜리 산책코스에서 길게는 3시간 이상 걸린다. 자신의 체력에 맞는 길을 선택하면 된다. 하이원리조트에서 출발한다면 마운틴콘도에서 하늘마중길·도롱이연못·낙엽송길을 거쳐 전망대와 하이원CC에 이르는 ‘9.4㎞ 3시간 코스’와 밸리콘도에서 출발해 무릉도원길, 백운산(마천봉), 산철쭉길, 마운틴탑(고산식물원), 도롱이연못을 거쳐 하늘마중길과 마운틴콘도에 이르는 ‘10.4㎞ 4시간 코스’가 인기다.
만항재(1330m)에서 화절령을 거쳐 새비재까지 이어지는 전체 하늘길은 40㎞에 육박한다.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루에 이 코스를 모두 걷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화절령 구간까지는 비교적 완만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화절령 구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도롱이연못이다. 지하탄광이 무너지며 땅이 꺼지고 지하수가 솟아올라 생긴 직경 100m에 달하는 웅덩이다. 주변 키 큰 낙엽송이 운치를 더한다. 탄광사고가 빈번하던 시절 광부의 아내들은 연못에 올라 활발하게 움직이는 도롱뇽을 보면서 남편 또한 무사할 것이라고 믿고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는 가슴먹먹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철로 위를 자전거로=폐 철로를 이용한 정선 레일바이크는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 구간(50분 소요)이다. 레일 위를 달리는 동안 단풍이 수놓은 비경을 만끽할 수 있어 가족이나 연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2인승 자전거 위에 앉아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뒤쪽 4인승에 올라 탄 가족의 모습이 정답다. 강철로 만들어진 자전거가 무거워 보이지만 페달 밟기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짧은 터널을 지나자 침엽수가 빽빽하고 조금 더 달리자 철교를 건넌다. 다리 아래 물 맑은 송천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강물 따라 철로가 놓여있어 주변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인근에 오장폭포와 노추산, 아우라지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정선=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