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은 공식적인 의학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이런 말을 사용하고 알아듣는다. 그만큼 집단적으로 분노가 우리 사회에 충만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원인을 찾아 대처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하는 바른 방법은 먼저 자신에게 원인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고, 그 다음이 외부에 원인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이켜보는 것이 먼저이다.
우리의 가정은 어땠을까? 아버지들은 가정과 가족을 위한다는 일념 아래 자신을 희생해가며 직장에서 야근하고 고생하는데, 막상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를 일 중독자이고 자기 출세에만 관심이 있고 가족은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원망하고 비난하는 것은 아닐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이다. 가정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족을 외면하는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어머니들은 다른 어떤 일보다 자식의 성적 향상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매를 들고 집에서 공부를 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가르칠 수 없을 때에는 과외공부를 시키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희생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자식들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마워하며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학대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원망하는 것은 아닐까? 이것 또한 사실이다. 아이들의 어린 마음에는 좋은 부모는 어디론가 없어지고, 무관심한 아버지와 가혹한 어머니만 있다는 오해가 싹튼다. 기성세대가 이렇게 가정교육을 받았고 그것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은 아닐까? 불행하게도 각자의 내적 성찰이 없으면 이런 악순환은 계속된다.
이런 내부적인 사정에 더해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 외부의 사회적 분위기인데, 일터에서는 쉴 틈 없이 상향지향적인 목표 달성을 강요하고, 오로지 성과 중심의 평가를 한다. 열심히 일해 기대하는 목표를 이뤄놓으면 또 다른 목표를 제시하는 등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탐욕의 요구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경험을 하면 남는 것은 허탈과 좌절 그리고 분노이다. 이렇듯 가정의 안과 밖에서 분노는 쌓여간다. 그 결과 흘러넘치는 분노의 방향이 내부로 향하면 우울증의 창궐, 자살율의 상승, 약물중독, 행위중독 등 자기를 해치는 결과가 나타나고, 분노가 밖으로 향하면 묻지마 폭력, 욱하고 화내기, 인터넷 악플, 사소한 일에 분노 폭발 등 남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결 방법은 원인의 제거이다. 가정 내에서는 우선순위가 식구들의 행복이다. 가족이 행복하려면 식구들 상호 간에 서로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서로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그러려면 가족들을 잘 지켜봐야 한다. 시간을 가지고 자세히 보고 대화가 가능하면 더욱 좋다. 밖에서 힘들더라도 가정 내에서 쉬면 새로운 힘을 낼 수 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조상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사람들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인데 마음이 편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사회도 편안해진다. 그래서 사회적 안녕의 일부분은 가정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외에 사회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 우리나라 교육법에 나와 있는 홍익인간의 구현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복원시키는 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각자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것은 특정 사회지도자에게 요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면 된다. 우리는 타인의 노예가 아니라 스스로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박용천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청사초롱-박용천] 분노충만 사회
입력 2015-10-20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