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미·중, 바다 위 싸움 아슬아슬

입력 2015-10-19 20:48 수정 2015-10-19 23:05
미국 해군의 원자력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승무원들이 지난 1일 일본 요코스카 기지에서 환영행사로 성조기 모양의 거대한 풍선이 게양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레이건호는 이곳에 배치돼 있던 조지 워싱턴호가 지난 5월 정비를 위해 일본을 떠남에 따라 배치된 후속 항공모함이다. 새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면서 일본은 미국과 방위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에 미국이 조만간 군함을 파견하겠다는 방침을 관련 국가들에 통보한 것으로 19일 알려져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남중국해 난사군도에서 지난 5월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9월 현재 난사군도 내 피어리 크로스 암초(중국명 융수자오)에 중국이 건설해놓은 활주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를 벌인다. 중국이 인공 섬을 만들어놓고 영해라고 주장하는 12해리 안으로 함대를 파견한다. 이에 중국은 미국의 행동이 '주권침해'라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불법으로 군사시설을 설치한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는 산호초에 불과하며 이 일대는 어떤 나라의 선박도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는 공해(公海)라고 반박했다. 미국은 '항해의 자유'를 확보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중국의 도전을 더 이상 묵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직은 중국의 해군력이 미국에 크게 못 미치지만 해양대국의 야망을 숨기지 않는 중국과 2차대전 이후 70년간 태평양에서 유일 패권국 지위를 누려온 미국의 갈등이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3년 만에 남중국해 ‘순찰’ 나서, 중국 반발=미국은 그동안 남중국해에서 빚어진 중국과 주변 지역 국가들의 영유권 분쟁에 적극 개입하지 않으려는 입장이었다.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 등 스프래틀리 군도 주변 5개국은 중국의 인공 섬 건설을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미국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무력보다 외교적 타결’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나아가 미 해군은 오해와 충돌을 피하기 위해 2012년 이후 스프래틀리 군도 접근을 자제했다. 지난 5월 미 해군 정찰기가 중국의 인공 섬 가까이 다가간 적은 있지만 중국 해군 관제탑의 경고를 받고 12해리 밖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계속되는 중국의 인공 섬 건설 확대로 주변 국가들의 반발과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은 입장을 바꿨다. 인공 섬에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3000m 길이의 활주로까지 등장하자 군사적 팽창 전략의 일환이 분명하다고 본 것이다. 중국은 그러나 등대 건설을 내세우며 민간 개발이 주 목적으로 군사시설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지난달 25일 워싱턴DC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 섬들을 군사시설로 이용할 뜻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미 행정부 관리들은 시 주석의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함정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정작 시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는 스프래틀리 군도를 군사시설화하지 않겠다고 한 말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시 주석이 귀국한 뒤 한국과 일본 호주 필리핀 등 주변 우방들에 함정 파견 계획을 전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6일 워싱턴DC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국제법을 어길 경우 한국이 목소리를 내 달라”고 주문해 남중국해 함대 파견 지지를 요청했다.

미국은 함정 파견 시기와 종류, 지역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군사 전문가 제임스 하디는 “예전에는 해양 순찰에 작은 전투함이 동원됐으나 이번에는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알리 버크급 최정예 구축함 선단을 파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해양 순찰에 반발했다. 시 주석은 19일 영국 방문에 앞서 전날 로이터통신과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남중국해의 섬과 암초들은 고대 이후 중국의 영토였고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땅”이라며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주권과 권익 침해에 대해선 누구라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변국 반응, “환영” “우려” 교차=앨버트 델 로자리오 필리핀 국방장관은 미 해군의 순찰은 이 지역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자리오 장관은 성명을 내고 “중국의 근거 없는 영유권 주장을 묵인하면 이 지역의 질서가 훼손되고 중국의 주장을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결론을 낳게 된다”고 미국의 함대 파견을 환영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대체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행동에 대해서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자칫 미국의 함대 파견이 무력충돌로 이어질까 우려한 것이다. 응 엥 헨 싱가포르 국방장관은 “미국은 항해의 자유가 있다”면서도 “이 지역에서 사고가 나면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는 중국의 인공 섬 건설이 ‘비생산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중국과 대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양 패권 경쟁의 끝은… “중국 해군력 미국 따라잡으려면 30년 더 걸려”=전문가들은 미국이 함대를 파견하더라도 중국이 섣불리 무력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최근 10년 사이 해군력을 급격하게 증강시켰지만 미국의 군사력에는 아직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직접 맞붙을 경우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중국이 잘 알고 있다.

중국의 보유 함선은 300척으로 남중국해 주변 5개국 함선을 모두 합친 200척을 훨씬 능가한다. 그러나 미국 해군력에 비하면 아직 중국은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항공모함 수만 보더라도 미국은 핵추진 항모 10척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겨우 소형 항모 1척을 갖고 있다. 미국은 2020년까지 군사력의 60%를 태평양 지역에 재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해군에 집중 투자하고 있지만 미국의 해군력에 필적하려면 향후 30년은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건 해양 패권의 역사를 보면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 간 갈등이 축적되면서 전쟁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진단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