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 지난 9월 대타협에서 일·가정 양립을 위해 국공립 보육시설을 30% 수준까지 확대키로 합의했지만 관련한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교육부는 신도시 공립유치원의 정원 기준을 기존의 절반으로 낮추는 방안을 내놓는 등 정반대 방향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저소득 노인을 위한 일자리사업의 월급(20만원)을 인상하는 방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음에도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해소를 위한 각종 대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추진 과정에서는 예산 문제 등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공립 보육시설 30% 확대’ 노사정 합의해놓고 정부는 ‘모르쇠’=19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따르면 노사정은 지난달 19일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합의문에 “국공립 보육시설을 30%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일·가정 양립 지원을 강화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이 합의는 노사정 대화 과정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활동을 종료한 노사정위 산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일자리 위원회’가 이미 2년 가까운 논의를 거쳐 ‘국공립 보육시설을 현재 12% 수준에서 30%까지 확대한다’는 조정안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가 노사정 대타협과 노동 관련 예산을 연계하는 방침을 정한 탓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가 이후 노사정 협상을 통해 최종 합의 결실을 본 것이다. 문제는 최종 합의가 이뤄진 이후에도 이를 어떻게 추진하고 예산에 어떻게 반영할지 등의 후속 작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육시설 확대에 결정적인 ‘예산 문제’를 쥐고 있는 기재부가 적극성을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공립 보육시설을 매년 늘리고는 있지만 단시간에 30%가 되긴 어렵다. 합의 때도 (우리는) 공공형 어린이집도 포함해서 30%를 하자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노동계 관계자는 “정부가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며 각종 대책을 내놓지만 정작 예산 지원사업에서는 합의된 내용조차 지키지 않고 발 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교육부는 최근 공립유치원의 정원 기준을 현행보다 오히려 절반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을 빚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입법예고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에서 신도시 지역에 신설하는 공립유치원의 정원 기준을 ‘신설 초등학교 정원의 4분의 1 이상’에서 ‘8분의 1이상’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지방교육재정 등 부담이 이유다. 정부가 유아교육의 공공성 확대를 강조해 온 것과 정반대 행보인 셈이다.
◇노인 일자리 보수 2배 올린다더니…11년째 20만원=한국고용정보원 전용석 부연구위원은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실태’ 보고서에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인 중 70.7%가 이 사업 외에는 소득이 없다고 밝혔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인 47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다.
그런데 설문조사 응답자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서 받는 보수 평균 액수는 월 21만6000원이었다. 1인당 기초연금 최고수급액이 20만원(부부합산 32만원)인 상황에서 저소득 노인들은 한 달에 50만원도 안되는 소득으로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이처럼 노인 일자리 사업이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생계유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2004년 사업 시행 이후 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사회공헌형 노인일자리사업 수당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한 공약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기재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문제로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인원과 보수를 함께 올릴 수 없어 인원만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규 참여 인원 증가폭도 지난해 7만명에서 올해 6만명으로 줄어든 상황이다.
전 부연구위원은 “예산 제약 등의 한계가 존재하지만 최소한 물가인상 등을 반영한 보수 인상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민영 기자, 세종=윤성민 기자 mymin@kmib.co.kr
[기획] 보육시설 확대·노인 일자리 보수 인상 ‘空約’ 되나… 정부, 대책 줄줄이 쏟아내고선 모르쇠
입력 2015-10-19 21:27 수정 2015-10-20 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