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단계 실태… 피해 막으려면] ‘취업 절벽’ 대학생들, 일자리·고수익 미끼 ‘덥석’

입력 2015-10-19 20:18

대학생 박모(25)씨는 지난해 7월 하마터면 ‘다단계의 늪’에 빠질 뻔했다. 오랜만에 걸려온 고교 동창의 전화 한통이 발단이었다. “방학동안 할 수 있는 용돈벌이를 소개해주겠다”는 동창의 손에 이끌려 찾은 곳은 서울 서초구의 한 다단계 업체였다. 스스로를 ‘다이아몬드 회원’이라 소개한 강사는 건강식품·화장품 등을 600만원어치 사서 ‘실버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곧 자신처럼 ‘다이아몬드’가 돼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수백만원씩 입금된 내역이 찍힌 통장도 보여줬다.

박씨가 그럴만한 돈이 없다고 하자 이 강사는 제2금융권에서 빌려 쓸 수 있다고 했다. 석연찮은 낌새에 가입을 망설이자 권유는 강요로 바뀌었다. 박씨는 늦은 밤까지 붙들려 있다 겨우 이 업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조희팔·주수도처럼 수조원대 사기 행각을 벌인 희대의 사기꾼들만 있는 건 아니다. 최근 크고 작은 다단계 사기가 잦다. 불법 다단계 업체가 주로 노리는 먹잇감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대학생, 노인, 주부 등이다. 이들은 ‘좋은 취직자리’ ‘단시간에 고수익 보장’ 등을 미끼로 내건다.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경기가 나빠지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악마의 유혹’은 더 달콤해진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교육센터’에 입소시켜 강의를 듣게 하고 찜질방 등에서 합숙도 강요한다. 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게 꼬드긴다. 이렇게 해서 산 상품을 고의로 훼손해 환불도 받지 못하게 한다. 친구를 따라 용돈벌이에 나선 대학생 등은 이런 방식으로 다단계에 빠지게 된다. 소비자 상담센터에 접수된 20대 불법 다단계 피해상담 사례만 해도 2012년 129건, 2013년 249건, 지난해 146건에 이른다.

취급하는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반복해서 팔기 어려운 값비싼 정수기·옥매트가 밀려나고 로션·샴푸·치약 같은 생활필수품은 물론 염색약, 건강식품 등이 주력 상품이 됐다. 지난 5일에는 모발 제품에 투자하면 배당과 더불어 천연 염색약으로 염색도 해준다며 노인과 주부 3만여명으로부터 720여억원을 가로챈 다단계 업체 대표 이모(47)씨가 구속됐다. 이씨는 3만5000원짜리 건강기능식품을 105만원에 팔아치우기도 했다.

수법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상품 판매와 회원 모집 수당을 주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의료기기를 판매한 뒤 임대해 투자 수익을 보장하겠다고 나선 조희팔처럼 ‘유사수신’ 방식이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환 관련 파생상품이나 비트코인, 핀테크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식의 ‘금융다단계’도 판치고 있다. 1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불법 유사수신 행위를 한 업체 115곳이 적발됐다. 적발 건수는 2011년 48건, 2012년 65건, 2013년 108건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어떻게 하면 다단계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는 합법적으로 등록된 다단계 업체의 명단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물건 구입이나 합숙을 강요하는 등 불법이 의심된다면 우선 등록된 다단계 업체가 맞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상품을 구입할 때 ‘공제번호 통지서’를 받아 보관하고 있어야 문제가 생겼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로 무리하게 상품을 구입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다단계 업체의 판매원 상위 1%는 지난해에 1년 동안 5864만원을 벌었다. 나머지 판매원 99%는 52만원밖에 벌지 못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