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시내 난민등록센터인 라게조(LaGeSo) 일대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1000명 안팎의 난민이 몰려 있었다. 이들은 진흙탕에 신발과 바지가 젖는 것은 일절 아랑곳하지 않고 등록을 위한 자신들의 번호가 불리기만 애타게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자 경비들이 저지했고, 자주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라게조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200∼300명 정도가 찾아왔지만 몇 주 사이 난민들의 독일행이 폭증하면서 요즘은 새벽은 물론 한밤중까지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현지 관계자는 “최소한의 확인절차만 거쳐도 하루 등록할 수 있는 사람은 500∼700명 수준인데 매일 수천명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온 사이드 다우오드(45)씨는 “새벽 4시에 와서 9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면서 “몇 달 동안 터키-그리스-마케도니아-세르비아-헝가리-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는데 3주가 되도록 아직 등록을 하지 못했고 이런 상태가 계속될까 봐 매일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12세 딸과 함께 온 시리아인인 티비 리나(48·여)씨는 “난민들의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 자주 주먹질을 한다”면서 “어린 딸한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난민 신세’라는 아픈 경험을 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라게조 주변에서는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는 난민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한 20대 난민은 시리아에 있는 가족과 통화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이 터키 국경에서 터키 휴대전화와 심카드를 사서 시리아로 들어갔다”면서 “나처럼 터키 심카드로 가족과 통화하는 난민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내가 정착하면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려올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난민들로 밀고 밀리는 라게조 건물 앞 모습과는 달리 건물 뒤편은 한산했다. 건물 뒤 풀밭에는 간단히 펴고 접을 수 있는 간이 천막이 하나 설치돼 있었다. 다가갔더니 천막 안에서 아기가 울고 있었다. 혹시라도 어수선한 틈에 아기가 다칠까 봐 엄마와 아이는 이곳에 남고 남편만 줄을 서러 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라게조 주변에서는 기독교와 가톨릭 등 종교단체들이 찾아와 난민들을 진찰해주거나, 먹거리와 옷가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특히 이날은 추위와 함께 비까지 내려 각 봉사단체마다 겨울옷을 받아가려는 난민들로 북적거렸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지리학자 벤 브로이어(35)씨는 “전쟁을 피해 오는 사람들인데 도울 수 있는 건 무엇이든 도와야 한다”면서 “설사 150만명이 오더라도 독일인들은 그들을 계속 도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호단체인 ‘베를린 시티미션’의 요아힘 렌츠 목사도 “난민들이 너무 많이 와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난민에 대한 관심에 눈을 뜨는 독일인도 많아지고 있다”면서 “하루 15개 컨테이너 분량의 옷이 기증되고 있는 게 그 증거”라고 소개했다.
베를린=글·사진 손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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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난민정책] 애타는 기다림… 난민등록 위해 하루 1천명 긴 줄
입력 2015-10-19 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