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은 어렵다. 게다가 매년 바뀐다. 기업과 개인사업자들은 세금을 낼 때 전문가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무사는 물론 국세청 등 세정당국 출신 인사들은 이런 폐쇄적 구조 아래서 경쟁 없는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평생 기댈 든든한 ‘밥그릇’이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20일 대법원은 이런 구조에 일침을 가하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법인과 개인사업자들이 매년 세금을 신고할 때 제출하는 세무조정계산서 작성에 반드시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기도록 규정한 법인세법과 소득세법 시행규칙은 무효라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법인과 개인사업자가 직접 세무조정계산서를 작성할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정부에 세무조정계산서를 작성할 자격의 정확한 기준에 대한 입법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 판결이 있은 지 8일 만에 기획재정부는 이와 관련된 소득세·법인세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했다. 그러나 세무조정계산서를 쓸 수 있는 자격에 추가된 것은 기존 세무사 자격자 외에 로펌(법무법인)이 전부였다. 여전히 개인과 기업은 전문적 능력이 있어도 세무사 자격증을 가진 대리인에게 수수료를 내야 한다. 매년 140만명의 법인과 개인사업자는 약 1조원의 수수료를 계속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기재부의 입법예고는 내용도 문제지만 입법예고 기간은 주말을 낀 4일에 불과했다. 기재부는 “입법예고 결과 특기할 의견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무조정 시장의 개방을 요구하는 한국경영지도사회는 입법예고가 끝난 뒤에야 알았다고 한다.
기재부 세제실장 출신인 백운찬 세무사회장은 지난 1월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제실장 재임시절 경영지도사가 세무대리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국세기본법을 개정한 것을 자신의 치적으로 알렸다. 지금도 2001년 이전 입사한 세무공무원은 10년 이상 근무 하면 세무사 시험에 혜택을 받는다. 이번 입법예고가 그들만의 밥그릇 지키기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현장기자-이성규] 정부의 ‘세제’ 밥그릇 지키기
입력 2015-10-19 20:05 수정 2015-10-20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