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넷 동갑내기 연기 열정은 청춘 그대로… ‘2인의 국민 엄마’ 가을무대 달군다

입력 2015-10-19 20:30 수정 2015-10-19 20:44

나문희(왼쪽 사진)와 김혜자(오른쪽). 올해 74살 동갑이자 TV, 영화, 연극을 가리지 않고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 온 두 여배우가 주역을 맡은 작품이 잇따라 무대에 오른다.

나문희는 30일부터 내달 1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서울, 1983’에 6·25전쟁으로 남편과 생이별한 뒤 홀로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 돌산댁으로 나온다. 김혜자는 11월 4일부터 12월 20일까지 서울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 화암홀에서 펼쳐지는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에서 불치병에 걸렸지만 가족과 주변에 사랑을 주는 소정 역으로 출연한다.

나문희는 1961년 MBC 라디오 1기 공채 성우로 출발했다. 당시 주말의 명화 여주인공을 도맡았던 그는 극작가 차범석이 이끌던 극단 산하에서 연극에 출연하는 한편 70년대 TV 드라마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드라마에선 주로 노역을 맡았던 그는 50대 들어선 90년대부터 더욱 주목받기 시작해 국민 어머니 반열에 올랐다. 88년 블랙코미디 영화 ‘조용한 가족’ 이후엔 코믹한 연기도 자주하며 연기 장인으로 각광받았다. 2007년 연극 ‘잘자요 엄마’를 통해 96년 ‘어머니’ 공연 뒤 12년 만에 무대에 돌아온 그는 연극 ‘황금연못’과 뮤지컬 ‘친정엄마’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뮤지컬 ‘서울, 1983’은 1983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김태수의 희곡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원작으로 분단의 고통과 이산의 아픔을 담았다.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당시 주제곡으로 쓰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비롯해 ‘상록수’ ‘꽃마차’ ‘울릉도 트위스트’ 등 80∼90년대 가요 11곡과 송시현이 새로 작곡한 15곡이 나온다. 나문희는 “이번 작품을 통해 뮤지컬이 이토록 큰 감동을 주는 장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도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지만 아직도 걱정스럽긴 하다”고 밝혔다.

김혜자는 63년 KBS 탤런트 1기로 연기를 시작해 일찌감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작 ‘전원일기’를 포함해 수많은 드라마에서 순종적인 며느리와 따뜻한 어머니 역을 연기했던 그는 불혹이던 81년 영화 ‘만추’에서 그동안의 이미지와 다른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200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섬뜩한 어머니 연기로 LA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세계 주요 영화제의 러브 콜도 많이 받았다.

젊은 시절 극단 자유 단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김혜자는 ‘셜리 발렌타인’ ‘19 그리고 80’ ‘다우트’ 등 주목할 만한 연극의 국내 초연에서 명연기를 보여줬다. 지난해엔 1인 11역을 소화해야 하는 모노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출연했다.

‘길 떠나기 좋은 날’은 연출을 맡은 극단 로뎀의 하상길 대표가 그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하 대표는 4년 전 처음 이 역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뒤 수정을 거듭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김혜자는 “‘오스카’를 끝으로 연극에 더 이상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길 떠나기 좋은 날’을 읽고 마음을 바꿨다”면서 “연극이란 장르는 매일 연기할 때마다 배우는 것이 많아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