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래하는 성우’ 이용신 “성우들 동안이 많아요, 아역 많이 하다보니 철이 없어서…”

입력 2015-10-20 20:27
성우 이용신씨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성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씨는 “가수, 배우, 개그맨 등이 성우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일인 만큼 성우로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목소리를 들으면 누군가 떠오르지만 눈앞의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귀에는 익지만 낯설다. ‘이용신’이라고 하면 누군지 금방 떠올리지 못 해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익숙한 초코파이 CM송을 불렀다고 하면 무릎을 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성우는 그런 직업이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정보라, ‘못 말리는 짱구’ 채성아 선생님, ‘달빛천사’ 루나는 한 사람이 연기했다.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롤·LOL)에 등장하는 구미호 아리의 목소리 연기도, tvN ‘렛미인’의 내레이션도 동일 인물이 했다. 발랄하고 명랑하고 밝고 통통 튀는 분위기의 목소리를 가진 성우 이용신씨 작품이다.

이씨는 노래하는 성우다. 강변가요제 출신이고 자신이 출연한 애니메이션 OST를 부르기도 한다. 최근 MBC ‘복면가왕’ 출연자인 ‘매운 맛을 보여 주마 고추아가씨’가 이씨라는 추측이 끊임없이 제기된 것은 이 때문이다. 멜로디데이 출신 여은으로 밝혀졌지만 이씨는 방송 한 번 나오지 않고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이씨를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애니메이션 OST를 많이 불러 콘서트까지 했으니 끊임없이 거론된 것 아닌가요? ‘복면가왕’ 출연은 정말 안 한 거죠?

“네, 제가 아닌 걸로 밝혀졌잖아요. 하하. 2010년에는 서울 홍대 소극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기도 했어요. 그동안 제가 부른 OST를 모아보니 60∼70곡 되더라고요. 그걸 좋아하시고 모아서 들으시는 분들도 꽤 있었고요. 반응이 열렬했어요. 하하.”

2003년 투니버스 공채로 시작해 벌써 13년차다. 하지만 나이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목소리와 분위기가 있다. 이씨는 “성우들은 동안이 많다. 아역을 많이 하다보니 철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고 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중학생 이하의 어린이나 청소년은 주로 여자 성우들이 맡는다. 남자 아이여도 그렇다. ‘명탐정 코난’이나 ‘못 말리는 짱구’처럼 10년 넘게 방송되는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성우들도 함께 간다. 성우는 중년을 넘겼지만 여전히 초등학생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 목소리를 오랫동안 연기하려면 색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연기 연습만 해서는 안 된다. 시대가 변하면서 아이들의 말투나 억양, 말 하는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린 아이들, 젊은이들의 달라지는 언어습관을 따라가야 한다.

“종종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서 아이들을 관찰해요. 엄마에게 떼쓰는 어린 아이, 친구들끼리 모여 있는 초등학생들이나 여중생들의 수다를 잘 들어요. 2005년 어린이들 말투와 2015년 어린이들 말투가 다르거든요. 요즘 애들이 쓰는 말을 잘 듣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해요. 성우는 우리 사회의 변해가는 언어 습관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대를 놓치면 안 되는 거죠.”

말투도 중요하다. 한 사람이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똑같아서는 안 된다. 코난의 정보라를 보면서 짱구의 채성아로 착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말투다. 캐릭터 성격에 따라 나긋나긋하게 말하거나, 툭툭 내뱉어야 한다. 때론 순박하게, 때론 거칠게 톤을 달리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씨는 “성우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관찰력”이라고 했다.

순발력도 중요하다. 성우는 스케줄을 잘 짜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몇 번씩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 헷갈리지 않도록 순발력과 노련함이 필요하다. “성우는 현실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일상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고 노력하고요.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하던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하던 결국 일상의 언어를 담아내야 하거든요.”

1980∼90년대 브라운관 TV가 집집마다 있던 시절, 성우들은 브라운관을 장악했었다. 맥가이버의 맥가이버(배한성), 엑스파일의 멀더(이규화)와 스컬리(서혜정), CSI 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섬(박일) 등은 마치 그 배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톰 크루즈와 톰 행크스(고(故) 오세홍), 브루스 윌리스(이정구), 샤론 스톤(강희선)처럼 인기 배우는 전담 성우도 있었다.

외화 더빙이 크게 줄면서 성우들의 입지는 좁아졌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나 예능 내레이션, 게임 캐릭터 목소리는 물론이고 광고 방송, 버스나 지하철 안내방송까지 성우가 만들어 낸 작업은 우리 일상과 단단하게 얽혀 있다.

“외화 더빙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추세인 것 같아요. 다만 노인, 어린 아이들, 시각 장애인처럼 자막을 읽기 힘들거나 자막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든 분들에게 더빙은 꼭 필요한 일이에요.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다양성 측면에서 외화 더빙이 계속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