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곰 생명이냐 200년 전통이냐… 기로에 선 英근위병 ‘털모자’

입력 2015-10-19 21:18

영국 버킹엄궁의 상징과도 같은 근위병들의 검은색 털모자가 동물권익단체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영국 국방 당국은 지난 한 해 동안 127개의 근위병 털모자를 주문했다. 높이가 18인치(45.72㎝)에 달하는 근위병용 털모자 1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캐나다산 흑곰 한 마리 분의 모피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동물애호가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털모자 생산을 위해 막대한 수의 흑곰이 희생된다는 이 같은 지적에 영국 국방부는 납품업체 공개를 꺼리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털모자 공급처를 밝힌다면 업체 관계자들은 욕설과 신체적 위해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버킹엄궁을 비롯한 영국군 근위부대 병사들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군이 곰 모피 모자를 쓴 나폴레옹 군대를 격퇴한 역사적 승리를 상징하기 위해 200년 전부터 이 털모자를 착용해 왔다. 영국 국방부는 최근 수년간 스텔라 매카트니, 비비언 웨스트우드 등 유명 디자이너들을 불러 곰 모피 대신 인조품을 쓰는 방안을 연구하도록 했으나 순모피 품질에 필적할 대체품을 찾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대변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군수품 생산 능력을 갖춘 영국군이 대체할 합성 물질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127개의 근위병 털모자 1개를 만들 때마다 곰 한 마리가 사냥총이나 덫에 의해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죽임을 당한다”면서 합성물질 개발을 통한 모피 대체를 촉구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