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41) 배우의 목소리

입력 2015-10-19 19:01
연극배우 출신의 리처드 버튼

사람의 인상은 절반 이상 목소리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배우도 다르지 않다. 아니 배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때에 따라서는 목소리가 배우를 대변한다. 그런 만큼 좋은 목소리, 특색 있는 목소리는 배우의 큰 자산이 된다.

목소리가 멋진 배우들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리처드 버튼과 피터 오툴이다. 둘 다 영국 태생에 셰익스피어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타고 난 멋진 목소리에 더해 정통 셰익스피어 연극무대에서 훈련을 쌓은 덕분에 발성도 훌륭해 목소리와 대사 구사력에 관한 한 가히 최고봉이었다. 외모나 연기력 등에 있어서는 그들을 능가하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겠으나 버튼의 울리는 듯한 쨍쨍한 목소리와 부드러우면서도 명료한 오툴의 목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버튼의 목소리는 미성(美聲)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들게 했다.

그런가 하면 좋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독특하고 개성 있는 목소리와 말투로 기억되는 배우들도 있다. 존 웨인. 비음이 약간 섞인, 자갈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에 느릿느릿 빼는 말투로 특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역시 독특한 것으로 지적되는 그의 걸음걸이나 연기 스타일은 모방할 수 있어도 목소리는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한다.

반면 목소리가 별로인 배우들도 물론 있다. 목소리야 타고나는 것인 만큼 배우의 잘못은 아니라 해도 아쉽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알랭 들롱이 그 예다. 들롱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숨 막히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긴 그래서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 냉혹하고 과묵한 살인자 등 악당역이 오히려 잘 어울렸는지는 몰라도.

들롱만큼도 아니면서 외모 하나만 내세워 스타덤에 오른 후 마치 국어책 읽듯 대사를 처리하는 요즘 일부 젊은 배우들은 버튼과 오툴 두 사람의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배우의 발성이란 무릇 저래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배워야 할 것이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