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출신인 김품창(49) 작가는 추계예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서울에서 활동하다 15년 전 제주도 서귀포로 떠났다. 이곳에 먼저 정착한 스승 이왈종 화백의 권유도 있었지만 정체되고 있는 자신의 작업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서였다.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심한 제주에서 그는 그림보다는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먼저 배웠다.
사랑채 같은 공간에서 삶을 나누고 교류하며 지역사회 문화에도 기여하겠다는 꿈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내와 두 딸을 돌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제 식구도 건사 못하면서 무슨 그림이냐”며 붓을 부러뜨린 적도 있었다. 동화작가로 활동하는 아내 장수명씨의 헌신적인 내조가 없었으면 화가의 길을 접었을지 모른다.
그림 그리는 것밖에는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는 그는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붓질을 이어갔다. 하늘을 날아가는 고래, 감귤나무 위에서 잠을 자는 문어, 고래를 타고 다니는 아이들, 수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밤바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하얀 목화꽃 등을 화폭에 옮겼다. 상상 속의 이상세계를 따스한 색깔과 정감 있는 구도로 붓질한 것이다.
어느덧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의 작업을 모아 서귀포 예술의전당 개관 기념 초대전을 26일까지 연다. 제주에 정착한 지 15년 만에 현지에서 처음 갖는 개인전이다. 하루에 13시간씩 작업하는 그의 작업실에는 1000점이 넘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연도별 대표작 100여점을 ‘어울림의 공간-제주환상’이라는 타이틀로 전시장에 가득 채웠다.
개막식이 열린 지난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제주의 풍광을 그린 내 그림은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와 인간이 서로 어울리는 공간”이라며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소통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상향”이라고 말했다. 지난 15년의 제주 삶을 정리하고 희망을 갖고 앞으로의 작업을 준비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전시다.제주=글·사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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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인간 어우러진 공간, 제주를 그리다
입력 2015-10-19 20:30 수정 2015-10-19 2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