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하순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몇 가지 주요 현안에서는 합의점을 찾았다. 미국에서 반감이 고조된 중국의 사이버 해킹과 관련해선 양국 정부가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목표로 한 사이버 공격은 자제하며, 이에 관한 글로벌 규약을 제정하는 데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아울러 중국이 2017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다고 발표, 오바마 대통령의 기후변화 대응에 힘을 실어줬다.
두 정상은 공식 회담 전날인 24일 밤 백악관 영빈관에서 2시간30분 넘게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만큼은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항해의 자유 등 국제 규범을 들며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건설을 문제 삼는 데 대해 시 주석은 그곳은 중국 고유 영토이며 핵심 국가 이익인 만큼 관여하지 말라고 되받아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측은 시 주석이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 정부가 남중국해 산호초 2곳에 등대를 완공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뒷받침된다.
‘인사한 뒤 뺨 때리는’ 격인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이 아니어도 오바마 행정부는 남중국해 문제로 이미 궁지에 몰린 상태다. 존 매케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등 미 의회 일각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너무 부드럽게 다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지난 3월 미 외교협회(CFR)의 로버트 블랙윌 연구위원 등은 경제 제재가 포함된 중국에 대한 신(新) 봉쇄정책을 주창하기도 했다.
남중국해 문제 대응과 관련해 미 정부 내에서는 국무부·정보기관의 온건론과 국방부 중심의 강경론이 맞섰다고 한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이 인공섬 해역으로 군함을 진입시켜 무력을 과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무부는 외교적 방안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 주석 방미 이후에도 중국의 변화가 없자 국방부 안(案)으로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미 태평양사령관과 해군참모총장 등은 조만간 군함과 항공기를 난사(영문명 스프래틀리) 군도 12해리 내로 진입시키겠다고 확인했다. 12해리는 각국이 자국 영해의 경계로 삼는 거리다. 중국은 주권 침해라며 강력히 반발할 게 분명하다.
미군 함정의 인공섬 12해리 내 항해가 정례화된다면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 정책이 일정 부분 변화하는 신호로 봐야 할 것이다. ‘파트너로서의 협력과 신뢰’에서 ‘선택적 협조와 제재’ 쪽으로 한 클릭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시 주석에 대한 미 정책 당국자들의 누적된 좌절감과 실망감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미국 정부는 시 주석이 취임 전 예상보다 훨씬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고 모험주의자(risk taker)라는 데 놀랐다고 한다. 미 상원 외교위 벤 카르딘 의원도 미 정책 당국자들이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과 인권이든 남중국해 문제에서든 지금처럼 충돌할지 예상치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 기자회견에서 “만약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 준수에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만큼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미국 입장이 강경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지지를 강력히 압박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무거운 적재량에 시달리는 한국 외교가 남중국해의 풍랑까지 맞지 않도록 신중한 행보가 요구된다.
배병우 국제부 선임기자
bwbae@kmib.co.kr
[돋을새김-배병우] 미·중의 ‘남중국해 결전’
입력 2015-10-19 19:30